‘연기돌’을 넘어섰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연출 신원호·극본 이우정, 이하 ‘응팔’)’을 통해 연기력을 톡톡히 입증한 배우 겸 가수 혜리가 지난 27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매회 마다 화제를 낳으며 안방극장을 웃고 울렸던 ‘응팔’이 아쉬움 속에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유로플랫폼(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가구 최고 시청률 21.6%를 기록하며 케이블TV 역사를 다시 쓸 만큼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정말 큰 사랑 받아서 특별하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정말 기뻤어요.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제가 폐를 많이 끼치면서 저 때문에 다른 에피소드가 안보였을 것 같아요.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보다 외모에 더 관심이 많은 쌍문고 2학년 여고생 덕선. 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라 별명도 ‘특공대’이지만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 깊은 둘째 딸이기도 하다.
실제로 2녀 중 맏딸인 혜리는 무뚝뚝한 자신을 덕선 언니 보라(류혜영 분)와 가깝다고 하지만 혜리는 ‘덕선 그 자체’였다.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건 제작진의 선구안도 있었겠지만 촬영장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였던 혜리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 아닐까.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 보다 감독님과 스태프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어떻게 보면 믿어주셨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고요. 모험이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뢰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뜨거웠던 관심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던 혜리는 덕선이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에게 연기로서 응답했다.
“많은 분들의 이목을 받는 드라마이다 보니까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건 사실이에요. 당연하게 생각해요. 처음에 제가 부담을 받는지 몰랐어요. ‘내 것만 열심히 준비하자’라는 생각만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뭔가 시원하고 후련하더라고요. 부담을 안 받는 줄 알았는데 은연중에 받았나 봐요. 연기하면서 ‘혜리가 아닌 덕선이는 상상할 수 없다’라는 칭찬이 제일 좋았어요. 시청자분들의 반응을 확인 안하는 게 힘든 드라마잖아요. 모니터를 하다가 댓글 확인도 하고, 항상 좋은 말씀이 많아서 기분 좋았어요.”
이야기하는 내내 혜리에게서 덕선이의 모습이 보였다. 혜리는 곧 덕선이였고, 덕선이는 곧 혜리였다. 그래서였을까. 혜리는 자기 자신보다 덕선이를 향한 악플이 신경이 쓰였고 마음이 아팠다.
“덕선이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아이)’라는 말을 보고 너무 속상했어요. ‘덕선이를 너무 믿게 만들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덕선이는 항상 뒤에 있고 배려하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걸 알겠어요.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게 선우(고경표 분)고 마음이 갔던 게 정환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예쁜 사랑이요. 택(박보검 분)이는 시작점이 달라요. 어려서부터 택이는 덕선이에게 거슬리고(?) 챙겨주고 싶은 친구였어요. 항상 궁금한 존재. 덕선이도 나중에 그걸 사랑이라고 깨닫게 됐죠. 그래서 택이를 대할 때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특히 덕선의 감정을 같이 따라가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장면이 있었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정환(류준열 분)은 덕선에게 장난스럽지만 진지하게 마음을 고백했다. 덕선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정환의 고백을 듣고 있었지만 화면 밖에서 혜리는 참 많이도 울었더랬다.
“대본 보고나서 너무 슬픈거에요. 덕선이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이 ‘우리 참 예쁘고 순수했다. 너 나 많이 좋아했구나’라는 과거형인 감정이었어요. 정환이가 처음 한 표현인데 그게 이별이었어요. 너무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고요. 추스르고 연기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혜리로서 옛날의 덕선이로서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어남택’, ‘어남류’ 사이에서 감정 연기를 펼쳤던 혜리는 대체 언제 남편을 알게 됐는지 물었다.
“시청자분들과 거의 비슷하게 알았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덕선이가 왜 택이를 자꾸 신경 쓰는지 궁금했어요.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감독님께 물었을 때 택이가 남편이어서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알게 됐어요. 혹시나 제 연기 때문에 혼란을 준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후에 시청자분들에게 설득력 있게 해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고요. 선우와 정환이와는 조금 더 다른 감정으로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혜리는 ‘응팔’ 이후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 섭외는 물론이고 바빠서 광고 촬영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광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혜리는 단독으로 약 13개의 광고를 촬영해 약 60억 원의 수입 올렸다. 그야말로 ‘광고퀸’에 등극했다.
“뿌듯하고 감사해요.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돈 욕심이 많지 않아서 저에 대해 쓰는 걸 아까워해요. 저 차도 없고 집도 없어요. 옷이나 가방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돈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다 가족들에게 써요. 엄마가 하시던 일도 그만두게 했어요. 그런 거에 대해 도움을 드리는 편이에요.”
‘응팔’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 혜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제는 ‘연기돌’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배우 혜리로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응답하길 기대해본다.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같이 만드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고 마음이 더 맞는 분들과 하고 싶어요. 굳이 주연이 아니더라도 애정이 있는 캐릭터면 어떤 역할이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