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경실련 최정표 대표의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입력 2016-02-17 16:40  




최정표 경실련 대표가 새 책을 냈다. 이번 주제는 경제민주화다.

그의 신작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와 왜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지, 방법은 무엇인지를 미국·일본의 사례를 들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경제민주화, 왜 필요하고, 무엇 때문에 안 되는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재벌로 꼽히는 사람은 미국의 존 록펠러다. 록펠러의 재산은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3,000억 달러에 달했다(빌 게이츠가 전성기 때의 재산이 1,000억 달러였고, 한국의 최고 부자인 이건희가 100억 달러 정도).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은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하는 완벽한 독점체제로 부의 제국을 구축했지만, 1890년 제정된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에 의해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 이후 미국에서는 독점으로 파괴된 시장에 공정한 경쟁을 도입한 친시장적 정책이 도입돼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축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도 ‘재벌’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한때는 재벌 천국이었다. 재벌은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고, 군국주의로 나아가던 1930년대에는 그 강력한 뒷받침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의 재벌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었다. 일본 스스로는 해체에 극력 반대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재벌 해체는 일본을 재건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재벌 해체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한 일본은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며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경제력 집중과 독점은 반시장이고, 이를 방지하는 것이 친시장이고 경제 발전이다. 이것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입증되었다. 미국은 독점 음모를 가장 엄하게 다스리는 나라다. 그런 전통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국 경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독점을 방지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선진국 진입의 전제조건이다. 경제민주화 없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없다. 저자가 우리나라도 경제민주화만 이룬다면 곧바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처럼 경제민주화야말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중요한 명제이지만, 현재로서는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저자는 왜 이토록 경제민주화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볼까? 왜 국민들은 경제민주화를 ‘도돌이표 정책’, ‘불임의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고 하는데, 국민들은 전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젊은이들은 ‘5포 세대’로 치부되면서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다. 노인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나는데, 노후 대책은 막연하다. 경제에 활기가 돌고 성장동력이 되살아날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재벌 지배 경제 체제를 바로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경제민주화에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말로만 외칠 뿐이다. 그것도 선거 때만.

바로 경제민주화의 열쇠를 쥔 재벌 체제가 변하지 않고, 개혁의 열쇠를 쥔 정치인들이 결코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는 항상 여야 구분 없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친다.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집권에 성공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재벌 중심으로 회귀했다. 이명박은 선거 때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으니 공약대로 한 것이지만,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서도 친재벌로 돌아서 버렸다.

정치인에게는 경제민주화가 결코 절실한 이슈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결코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또다시 경제민주화를 외칠 것이다.

경제민주화, 한국경제를 살리는 활인검인가

한국경제는 전형적인 ‘온돌경제’다. 온돌방에 불을 때면 윗목만 더 뜨거워지고 아랫목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재벌은 나날이 돈을 쌓아가고 있지만, 서민, 영세사업자, 중소기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경기부양책을 쏟아내도 재벌만 살찌고 중소기업에는 아무런 기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경제 또한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에 활기가 돌고 성장동력이 되살아날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극소수의 슈퍼 부자들은 돈의 홍수에 파묻혀 있다.

재벌은 이미 돈의 저수지가 되어 있고 재벌 주변의 영합 세력들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낙숫물 정도를 꿀물처럼 여기면서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로의 경제력 집중과 부의 집중은 한국사회를 우려할 수준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역동성 있는 국가로 만드는 길은 바로 ‘경제민주화’뿐이다. 더 이상 재벌에게 의존하는 정책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방을 골고루 데우기 위해선 윗목만 데우는 재래식 온돌을 뜯어내고 방 전체를 고르게 데우는 보일러식 온돌로 바꿔야 하는 것처럼 경제의 틀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이다.

경제민주화, 어떻게 이룰 것인가

경제민주화는 국가경제의 틀과 구조를 밑바탕에서부터 바꾸는 혁명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확실한 철학과 실천의지를 가진 국가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렵다. 식견과 비전을 가진 능력 있는 지도자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나서지 않는 한 거센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자를 찾아내고 만드는 것은 국민이다. 결국 경제민주화는 국민의 몫이다.

경제는 파이와 같다.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그 파이를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은 파이를 키우는 일이고, 복지를 증대시키는 정책은 파이를 고르게 나누는 일이다. 옛날에는 파이를 키우는 일에 치중했지만, 지금은 파이를 고르게 나누는 일을 중시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파이를 잘 나누어서 이를 바탕으로 파이를 더 키워가자는 접근이다. 이제 잘 나누지 않으면 더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쪽이 너무 많이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파이를 키우는 선봉장은 재벌이었다. 그러다보니 파이가 커지면서 재벌도 엄청나게 커졌다. 반면에 재벌 이외의 부문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파이를 키우면서 자신들이 그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렸다.

이제는 넘치는 재벌의 돈을 끌어내야 한다. 30대 재벌이 600조 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풍년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가득 찬 저수지의 물이 흘러 나와야 한다. 저수지에 그대로 차 있기만 하면 농사가 잘될 리 없다. 그런데 어떤 유인책을 써도 재벌의 돈은 투자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그 방법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여기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중소기업으로 끌어내는 것과 임금으로 돌게 하는 것이다. 가득 쌓여있는 사내 유보금을 근로자와 중소기업에게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세습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소개

최정표

30년 이상 독점 문제와 재벌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오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이론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6년간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2003~2009)을 지내면서 현실 문제를 폭넓게 다뤘으며,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정책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독일, 영국, 미국 등의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선진국의 대기업 구조에 대해 연구하였고, 특히 Japan Foundation의 초청으로 도쿄 대학 경제학부에서 1년간 일본의 재벌에 대해 연구하면서 일본처럼 재벌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업 제도가 아니고서는 한국경제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91년에 펴낸 『재벌, 성장의 주역인가 탐욕의 화신인가』(강철규, 장지상 공저)는 재벌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국내 첫 저작물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재벌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 정치, 경제적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설립 시부터 경제 정의 실천을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재벌 문제의 개선을 통한 경제 개혁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한국 재벌에 관한 「Diversification, Concentration and Economic Performance: Korean Business Groups」(Review of Industrial Organization, 2002)는 한국 재벌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많이 찾는 논문이다. 최근에 출간한 『한국재벌사연구』(2014)는 한국 재벌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정리하면서 재벌 구조의 발전적인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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