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총사 언니, 오빠들이요? 시사회에서 다시 만나니까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일단 외모적인 부분이 많이 변해서(웃음). 그런데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진짜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현은 지칠법한 스케줄에도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순정`의 배우 오총사 이야기를 꺼내며 농담을 던지던 그에게서 17살의 풋풋함이 묻어나왔다.
영화 ‘순정’은 1991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 첫사랑, 첫우정을 그린 만큼 풋풋하고 설레는 감성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나 1999년생인 김소현이 1991년의 감성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본에 특이하게 영화에 들어갈 노래가 쓰여 있었어요. 1991년은 잘 모르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대본을 보니까 그 시대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더라고요. 그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감독님이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기 보다는 배우들끼리 잘 노는 걸 원하셨거든요. 그래서 촬영할 때도 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소현은 평소 낯을 가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정말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하며 웃음을 지었다. "현장에서 언니, 오빠들이랑 대화를 정말 많이 했어요. 쉬는 시간에는 오빠들이 일부러 막 웃겨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힘들긴 하지만 장난도 걸어보고, 말도 해보고 그렇게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이 친해졌죠. 마니또 같은 것도 해보고…”
김소현과 `순정` 속 수옥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었다. 밝으면서도 차분하고, 여리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이 그랬다. 김소현이 본 `수옥`은 어떤 캐릭터였을까. 그는 대본에서 수옥을 처음 마주하고 가장 먼저 ‘어떤 아이일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단순한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처음엔 밝고 씩씩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갈등이 생기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인물이에요. 다리가 아프면서도 친구들에겐 아프다고 내색하지 않고 혼자 안고 있거든요. 후반부에 겪게 될 수옥이의 아픔을 미리 염두에 두고 초반부 촬영에 임했어요. 웃을 때조차도 그 부분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보니 수옥이가 저 같고, 제가 수옥이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극중 한쪽 다리가 불편한 수옥은 절망적인 상황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 만큼 힘든 촬영도 많았을 터. 이에 김소현은 절벽 신부터 수중 신까지 차례로 에피소드를 풀어놨다. “절벽에서 촬영할 때가 가장 무섭고 힘들었어요. 비를 너무 세게 맞으니까 뺨을 맞는 것 같았거든요(웃음). 또 수중 촬영도 기억에 남아요. ‘혼자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경수 오빠는 생각보다 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하나도 무서운 것 없이 바로 바로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놀랐어요. 배려가 정말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 게, 물속에서 나올 때 항상 저를 먼저 밀어줬어요. 그게 쉽지 않을 텐데 자기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고 먼저 올라가라고 하더라고요. 수중 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순정`은 수중 신에 앞서 ‘우산 키스 신’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범실과 수옥의 애틋한 우산 키스 장면, 김소현에게는 어땠을까. “우산 키스신은 뭔가 달랐어요. 접촉이 아예 없잖아요. 제일 먼 거리의 키스신인데, 그런데도 눈을 계속 쳐다보고, 서로의 마음을 그렇게 고백하고, 그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깊이 교감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설레면서도 아픈, 그 장면은 저에게 그런 느낌이었어요”
첫사랑의 설렘, 아픔을 담은 캐릭터를 연기한 김소현. 그러나 아직 첫사랑은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첫사랑이 없었어요. 그래서 수옥이가 범실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하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순정을 하면서 첫사랑을 경험해본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면서 첫사랑에 대한 로망을 고백하기도 했다. “범실이와 수옥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짝사랑 말고 서로에게 반하게 되는 걸 원해요. 이상형이요? 캐릭터로 따지면 범실이와 개덕(이다윗)이를 살짝 섞어놓은 정도? 산돌(연준석)이의 묵직하고 용기 있는 모습도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첫사랑에 대한 로망, 그렇다면 학창시절에 대한 로망은 없는 것일까. 현재 홈스쿨링 중인 그는 지금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답했다. “다들 고등학교 때만 누리는 시간을 포기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중학교 때 진짜 많은 활동을 했거든요.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고등학교 생활을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선택이 쉽진 않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연기랑 작품에 대한 욕심이 크거든요. 작품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더 집중하고 싶어요.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는 것보다 제가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덕분에 문화 생활을 많이 하고 있어요(웃음)”
학업을 포기할 만큼 연기에 대한 김소현의 열정은 남달랐다. 그는 아역과 성인 배우의 과도기에 서있는 만큼 나름대로의 계획도 털어놨다. “스무 살이 2년 정도 남았어요.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발전하는데 더 집중하고 제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어차피 지금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영화나 책은 다 보려고 노력해요”
김소현은 청순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답했다.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숙제인 것 같아요. 아직은 다양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진 않아요. 포스트 손예진이라는 말도 많이 듣는데, 너무나 존경하는 선배님이죠. 하지만 저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요. 도전을 하다보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아직 화내고 쏟아내는 연기가 부족한데 그런 것도 잘 해내게 된다면 여리여리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 내내 밝으면서도 진중한 모습을 내비쳤던 김소현에게서 `애어른`의 향기가 묻어나왔다. 이런 질문에 그는 "맞아요. 자주 들어요"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인터뷰를 위해 만나 본 김소현은 17살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생각과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말 한 마디에 신중할 줄 알고, 그 가운데 진심을 담을 줄 아는 김소현, 참 예쁘다. (사진=싸이더스HQ)
김민서기자ming@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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