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기부만 받습니다"…은행에 방치된 청년희망펀드

정원우 기자

입력 2016-04-15 07:24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니 필요한 재원을 국민 기부로 마련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그 해 법무부에서 도입한 공익신탁 제도를 통해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이 탄생했습니다. 원칙은 어디까지나 청년 실업 문제를 걱정하는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이고도 순수한 기부였습니다.



국무회의 이후 일주일도 안됐습니다. 속전속결로 법무부 인가(9월 21일)가 떨어졌고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1호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통령이 나섰으니 누구라도 가만히 있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후 각계 각층 유명인사들이 기부에 동참했고 은행들은 너도나도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의 수탁기관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청년 취업난을 걱정하는 모두가 그렇게 발벗고 나서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습니다. 법무부 공익신탁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는 오늘(4월 14일)까지 9만3천50명이 389억원을 기부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청년 일자리 사업에 써달라고 맡겼던 기부금인데 지금까지 집행한 돈은 10억원에 불과합니다. 389억원 중에 고작 10억원 뿐입니다.



기부금은 충분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개인 기부자들이 낸 돈은 당분간 쓸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서 마련한 10억원으로 청년희망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때마침 고맙게도(?) 대기업들이 기부의 뜻을 전해왔습니다. 일일이 은행에 갈 수 없는 기업인들을 위해 청년희망재단은 원칙을 깨고 단체 기부를 받기로 합니다. 알만한 대기업들이 한번에 200억씩 내놓으면서 재단에는 순식간에 1천억원이 넘는 돈이 몰렸습니다.



마다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국민 한명 한명의 뜻을 모아 청년 취업난을 해결해보자는 초심은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기꺼이 내놨던 개인 기부자들의 순수한 뜻도 초라해졌습니다. 기부에도 원칙보다는 예외나 관용이 적용됐습니다.



개인 기부자들이 맡긴 돈은 갈 곳 없이 은행에 예금으로 남았습니다. 올해 예상되는 운용 수익은 6억원. 수익률은 1.5% 수준입니다. 계좌이체 등을 통해 기부를 약정한 금액도 30억원에 달하는데 이대로라면 이 돈도 은행 구석에 쌓이게 됩니다. 한 은행원은 "요즘도 기부하러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차라리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푸념합니다.



기부금이라도 아꼈으니 좋아해야 할까요? 돌아보면 출발부터 순수한 기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 은행은 청년희망펀드 가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은행원들까지 기부에 동원했고, 정부는 가입 독려를 위한 홍보 지침을 은행에 강요하다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의 기부 액수는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기부하지 않은 기업의 이름은 블랙리스트인양 나돌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기부였을까요? 그러는 사이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12.5%,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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