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탐구 생활] “지루할 줄 알았지?”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 5

입력 2016-05-11 08:02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공간에서만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 대신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 승부를 걸어 명작으로 평가 받곤 한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독특한 매력의 영화 5편을 모아봤다.

▲폰부스(2003)

감독: 조엘슈마허

출연: 콜린 파렐, 포레스트 휘테커, 키퍼 서덜랜드

줄거리: 어느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를 하게 된 뉴욕의 미디어 에이전트 스투 세퍼드. 통화를 끊고 돌아서는 그가 벨소리에 수화기를 들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전화를 끊으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는 장난 전화로 생각해 전화를 끊으려 하지만 남자와 이야기할수록 심상치 않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폰부스’는 한정된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유명하다. 영화는 극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뉴욕 길거리를 제외하고 한평 남짓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진행된다. 섣불리 전화를 끊을 수도, 부스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점점 의문의 협박범이 던진 덫에 걸려들게 되고, 일상적 공간인 전화 부스는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는 공포의 공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 긴장감이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에 감탄하게 될 만큼 강렬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콜린 파렐의 열연이야말로 몰입도를 높인 일등공신이다.

+대사 한 줄: 앞으론 착하게 살아. 그렇지 않으면 내 전화를 받게 될거야.

▲맨 프럼 어스(2007)

감독: 리처드 쉔크만

출연: 존 빌링슬리, 엘렌 크로포드, 윌리엄 캇, 애니카 피터슨, 리차드 리엘

줄거리: 10년간 지방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한 존 올드맨은 종신교수직도 거절하고 돌연 이사를 가려한다. 그리고 동료들이 준비한 환송회에서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고 폭탄 고백한다. 그는 매번 10년마다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에 다른 신분으로 바꿔 이주해왔고 자신이 그 동안 이동하면서 역사 속 많은 인물들과 사건에 관여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에 그의 환송회 자리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된다.

자신이 불사의 존재이며, 심지어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영화는 한 남자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놓고 8명의 출연진들이 펼치는 토론으로 채워진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동료 교수들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진실을 추궁하고, 주인공은 논리적인 반박으로 팽팽히 맞선다. 이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지지만 주인공의 집으로 한정된 배경에 학술적인 토론이 전부인 영화인 만큼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촘촘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들의 토론이 웬만한 액션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대사 한 줄: 당신은 1년 전 오늘 어디에 있었나요?

▲대학살의 신(2012)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C.라일리

줄거리: 11살 재커리는 친구들과 다투던 중 막대기를 휘둘러 이턴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다. 합의를 보기 위해 모인 두 아이의 부모들은 품격 있는 대화를 시작하지만, 결국 밑바닥을 보이고 만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끔찍한 테러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대학살의 신’은 깨알 같은 재미와 신랄한 풍자로 가득한 영화다. 소위 `배울만큼 배운` 네 명의 주인공들은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경쟁하듯 교양 넘치는 대화를 이어가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한다. 스펙타클한 코미디물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중할수록 보이는 잔재미와 이름만으로 남다른 무게감을 자랑하는 명품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열연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 전반적으로 풀어내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갈등, 또 영화 후반부에 살짝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헛웃음을 자아낼 만큼 인상적이다.

+대사 한 줄: 이런 망할 튤립!

▲127시간(2011)

감독: 대니 보일

출연: 제임스 프랭코

줄거리: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년, 홀로 등반에 나선 에런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에겐 산악용 로프와 칼, 500ml의 물 한 병이 전부. 127시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그는 탈출을 위해 자신의 팔을 잘라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번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미국의 27살 청년 에런 랠스턴이 겪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127시간’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인간의 뜨거운 생존 본능과 의지를 처절하게 그렸다. 지금 의기소침해 있거나, 무료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이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삶에 대한 뜨거운 의욕이 충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사 한 줄: 절대로 싸다고 중국산 구입하지 마요.

▲베리드(2010)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줄거리: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트럭 운전사 폴 콘로이는 어느날 갑작스런 습격을 받은 후 낯선 곳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땅 속, 심지어 관에 생매장된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칼, 라이터, 그리고 주인 모를 핸드폰 뿐. 그는 과연 탈출에 성공할 것인가.

스페인 출신의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이 만든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저예산 영화 ‘베리드’. 이 영화의 한정된 공간은 관이다. 어딘가에 갇히게 된다는 불안감이 주는 공포는 영화 속에서 극대화돼, 주인공 폴이 겪는 공포와 압박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좁은 관 속에서 오로지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두려움, 희망, 분노 등 죽음에 맞선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는 폭발적이다. 여기에 관객 뒷목을 여러번 잡게 하는 거대한 사회 부조리까지 파헤친 `베리드`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명작으로 꼽힌다.

+대사 한 줄: 아..이런...마크 화이트예요...(사진=각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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