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美 최초 여성 대통령 될까..‘8년 재수’ 끝 대선 본선 티켓 획득

입력 2016-06-07 15:37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며 백악관입성을 향해 한발 더 다가갔다.

퍼스트레이디에 이어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까지 거치며 미국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클린턴 전 장관은 이제 8년간의 재수 끝에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자리를 넘보게 됐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의 자체 집계를 기준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전체 대의원 과반인 2383명을 확보해 본선행을 사실상 확정지은 클린턴은 한마디로 `준비된 후보`다.

퍼스트 레이디에 상원의원, 국무장관, 그리고 비록 패했지만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까지 경험한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손색이 없는 프로필을 갖췄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클린턴은 1947년 10월26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근교에서 섬유업계 사장 출신으로 영국 웨일스 혈통인 아버지 휴 앨즈워스 로댐과 전업주부인 도로시 하월 로댐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를 믿는 보수적 가정에서 성장한 클린턴은 어려서부터 활달했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교 때에는 학급회장, 토론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사회과학 부분 최우수상을 받은 우등생이었다.

클린턴이 애초부터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16세 때 고교생으로서 `신보수주의 운동`의 기수였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베리 골드워터의 선거캠프에서 일했고 명문여대인 웰즐리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정치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공화주의자 클럽` 동아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말부터 미국 전역에 불어닥친 민권운동 열풍 속에 민주당원으로 돌아섰다. 특히 1968년의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이 정치 지향을 바꾼 계기가 됐다.

웰즐리 대학 졸업식 때 학생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졸업연설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설 후 7분여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받은 것이 화제가 돼 라이프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대학 행정대 회장이었던 클린턴은 동기 여학생들을 향해 "아직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도력과 힘을 발휘할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외쳤다.

1969년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클린턴은 예일 리뷰 편집인을 맡고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때 한 살 많은 아칸소 주 출신 법학도인 남편인 빌을 만났고 이는 클린턴의 인생 항로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됐다.

이후 월터 먼데일 당시 상원의원의 이민노동자 소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이민과 보건, 교육문제를 다뤘고 빌과 함께 하원 법사위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탄핵준비팀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빌과 결혼한 것은 1975년 10월. 아칸소주 리틀 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민 클린턴은 남편 빌이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거쳐 1978년 주지사에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 날개를 펴는 동안 로즈 법률법인의 변호사로 일하며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빌이 1982년 주지사에 재선된 이후 클린턴은 로즈 법률법인 파트너로 활약하면서도 연방정부기관인 아칸소주 교육기준위원장, 농촌보건자문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영향력 있는 100대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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