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경제학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학자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미국경기 진단과 처방을 놓고 ‘21세기 블러그 전쟁’이라 불리울 만큼 두 학자 간 설전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닛 옐런 현 Fed 의장으로 옮겨지는 추세다.
통화정책의 기본 잣대인 경기진단부터 엇갈린다. 지난 1년간 분기별 성장률을 보면 둔화세가 뚜렷하다(작년 3Q 2.0%→4Q 0.9%→올해 1Q 0.8%→2Q 1.1%). 두 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공식 판단하는 미국경제연구소(NBER)도 쉽게 의견을 내놓을 수 없는 추이다. 실제로 경기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금융위기 극복에 책임을 맡아왔던 버냉키는 ‘완만한 회복기조’라는 종전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잭슨 홀 미팅 이후 옐런은 더 ‘낙관적’으로 변했다. 옐런의 이런 경기진단에 대해 서머스는 너무 ‘안이하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장기침체 국면에 진입하는 단계’라 비판했다.
서머스가 금융위기 이후 줄 곧 주장해온 장기침체론은 1938년 당시 하버드대 교수였던 엘빈 핸슨이 처음 주장했던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가설을 총공급(AS) 곡선과 총수요(AD) 곡선으로 설명하면 AD 곡선은 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된다. AS 곡선은 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시장을 망라하는 ‘AD’가 ‘AS’보다 부족하다면 경기침체는 구조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머스의 주장이다.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에 버냉키와 옐런은 `과잉저축 가설`로 대응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저축이 소비보다 많으면 경기가 둔화된다는 ‘절약의 약설’이다. 특히 미국처럼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경제에서는 절약의 역설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경제는 나라 안팎으로 ‘쌍둥이 과잉 저축론’에 시달리고 있다고 봤다. 특히 미국의 주요 수출지역인 아시아 국가가 외화를 과다하게 쌓고 있는 점이 경기 회복세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쌍둥이 과잉 저축론이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점을 중시해 옐런은 앞으로 경기가 더 견실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머스는 일시적인 ‘마약’에 불과한 금융완화정책은 하루빨리 철회돼야 할 ‘악습’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 대신 단기적으로 재정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리고,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중장기적인 성장기반을 확충해야 장기침체 국면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재정정책에 대해 버냉키와 옐런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 왔던 자신의 통화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머스가 주장하는 케인스언 정책처방은 ‘한물간 이론’이라고 폄하한다. 2차 대전 이후 고성장할 때는 금융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시기와 맞물리는 실증적 자료를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달 20일부터 양일간 열릴 Fed 회의를 앞두고 논쟁이 더 격해지고 있는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견해도 엇갈린다. 서머스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데 추가 금리인상을 논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작년 12월에 단행했던 금리인상부터 원천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4대 거시지표(성장, 물가, 고용, 국제수지) 중 가장 양호한 실업률도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와 옐런이 주도해 왔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효과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비전통적 통화정책 효과를 반영한 거시경제 모형(DSGE·충격 발생 때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으로 충격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 전제)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그 효과가 미약한 것으로 나온다. 실업률이 떨어졌다고 금리를 올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버냉키도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한 때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기가 완전치 못하고 양대 책무 중 고용지표도 노동생산성이 부진해 총수요 항목(민간소비, 설비투자, 수출) 중 유일하게 회복세를 보이는 민간소비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물가가 조만간 목표치(2%)에 도달할 것이라는 옐런의 시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출구전략 추진이 너무 늦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던 옐런이 금리인상에 매파적 발언을 한 잭슨 홀 미팅 이후 코너에 몰리고 있다. 과연 이달 Fed 회의에서 ‘추가 금리인상 카드’로 정면 돌파할 것인지 여부가 시장 참여자의 최대 궁금증이자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9일(미국 시간) 다우존스평균지수는 400포인트 가깝게 떨어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