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외모와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 박보검. 여기에 따뜻하고 순수한 심성도 지녔다. 이러니 ‘박보검앓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 일컬을 수 있는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지난 18일 아쉬움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종영한지 열흘이 넘게 지났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의 진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영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긴 했는데 잊고 싶지 않은 캐릭터예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에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경복궁에서 팬 사인회를 하고 포상휴가로 필리핀 세부에 갔을 때 관심을 체감했어요. 팬들이 저를 가까이서 보려고 다가오시는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더라고요. 팬 사랑이 제가 활동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인데 또 감사의 마음을 막 표현할 수 없는 게 현실이 돼버린 거잖아요. ‘내 손동작, 말 하나에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스태프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박보검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어 자신이 주연을 맡은 두 편의 드라마를 연달아 흥행시켰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처음 박보검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때 기대와 우려의 반응을 함께 받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의 차기작은 잘 안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보검은 보기 좋게 ‘응답’의 저주를 깨부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참 겸손했다.
“저를 첫 번째로 ‘구르미 그린 달빛’에 캐스팅 해 주셔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리고 (김)유정이, 진영이, (곽)동연이, (채)수빈이를 비롯해 천호진 선배님, 박철민 선배님, 이준혁 선배님 등 대선배님들이 캐스팅 되면서 제가 이 탄탄한 선배님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은근히 책임감도 있었고 어깨가 무거워졌죠. 그런데 가족, 회사 분들이 ‘네가 다 이끌어 가는 게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같이 끌어가는 거다. 뭘 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해줬어요. ‘응팔’ 첫 방송 전날 신원호 감독님이 ‘이 작품이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상심하지 말라. 모두가 주인공이다.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즐기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걸 생각하면서, ‘내가 다 책임져야지’ 생각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만드는 거니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박보검은 츤데레 왕세자 이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유정(홍라온)과 조선시대 연애 스토리를 그들만의 특유한 풋풋함으로 소화해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부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완벽히 표현해냈다.
“(김)유정이는 사극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친구였고, 저보다 연기 경력도 선배예요. 사실 초반에는 어색했어요. 오빠라고도 안 하고 저한테 ‘박보검님’이라고 했었나, 그랬어요. 유정이가 힘들었을 거예요. 감정 폭이 넓은 캐릭터였잖아요. 그래서 유정이가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홍라온을 사랑스럽게 표현해 준 유정이가 대단했어요.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저도 일할 때도 직진, 연애할 때도 직진하는 편이에요. 한 가지밖에 집중을 못하는 편이라 나머지를 신경 쓰는 게 어렵더라고요. 연애할 때도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하고요.”
박보검의 빛나는 연기력은 매회 최고의 1분을 장식했다. 이영의 홍라온에 대한 심쿵 대사는 여심을 녹였다. “불허한다, 내 사람이다”, “이영이다, 내 이름”, “내가 한번 해 보련다, 그 못된 사랑” 등 오글거릴 수 있는 대사들이었지만 박보검은 이를 담백하게 살려냈다.
“대본을 볼 때마다 엔딩에 매력 포인트가 많더라고요. 제가 읽을 때도 ‘으아, 어떻게 하지’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 대사들을 좋아해주실 줄 몰랐는데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박보검이 꼽는 명장면은 무엇일까. 그는 연기할 때 기억에 남은 장면으로 구덩이 신, 풍등 신, 수중 신을 꼽았다.
“구덩이 신에서 그 때만큼은 감정에 충실해 제가 이영이 된 것 같았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절대 쓰는 않는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가 나오더라고요. 대본으로만 봤을 때와 달리 직접 구덩이에 빠지니까 공기, 흙냄새가 느껴졌고, 정말 김유정이 원망스러웠어요. 풍등 신은 불날까 봐 제작진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고, 스태프분들이 분장을 하시고 함께 풍등을 날려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수중 신은 제 인생에 있어서도 첫 수중 촬영이었는데요. 처음이라서 걱정도 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첫 사극에 로맨스, 액션 연기까지 박보검에게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고뇌와 열정은 브라운관을 통해 모두 전해졌다. 박보검은 더할 나위 없이 이영 그 자체였다. 약 3개월간 시청자를 웃고 울린 전 국민의 ‘내 사람’이었다.
“정통사극을 나중에 하게 된다면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고 도전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다행이었던 게 이영이 세자에서 성군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저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 역시 사극에 처음 도전했고 배워가면서 성장하는 거요. 마지막에 붉은 용포를 입은 이영의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 울컥했었어요. 그동안 흔들렸던 마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외롭고 쓸쓸했죠. 선배님들께 감사해요. 선배님들이 먼저 손 내밀어 주시고 조언해주셔서 내가 놓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어요. 선배님들 덕분에 이영이 만들어진 거고, 끝까지 이영이 굳게 잘 서서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박보검은 1시간 남짓 이야기 하는 내내 솔직하면서도 진중했고 또 밝았다. 평소 박보검의 모습이 이영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에게 더 열광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떠한 면을 좋아해주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쑥스러워요. 저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실망 시키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신중한 편이에요. 사실 제가 능청스러운 면이 있는지 이번에 알았어요. 자신감이 없었던 이유 중에는 코믹연기 부분도 있었거든요.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표정으로 표현이 어려운 거 있잖아요. 거울 보면서 연습을 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구덩이에 빠지는 장면 덕분에 확 풀렸어요. 대사, 장면을 요리할 수 있는 걸 배웠거든요. 능청스러운 연기가 갈수록 재미있어졌죠.”
싱어송라이터를 꿈 꿔왔던 박보검은 지금의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를 만나 연기자로 전향하기로 결심, 지난 2011년 영화 ‘블러드’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첫 발을 뗐다. 이후 드라마 ‘각시탈’(2012), 드라마 ‘원더풀 마마’(2013), 드라마 ‘참 좋은 시절’(2014), 드라마 ‘너를 기억해’(2015), 영화 ‘차이나타운’(2015)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그러다가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 역을 맡으며 ‘대세’로 떠올랐다. 그리고 데뷔 6년 만인 올해 첫 주연작 ‘구르미 그린 달빛’을 만난 것이다.
“배우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수를 준비했던 건 이번 작품에서 OST를 불러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살아보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잖아요. 지금까지 작품을 위해 승마, 액션, 바둑 등을 배웠어요.”
박보검의 소속사 블러썸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송중기부터 박보검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차태현과 송중기는 후배 박보검을 챙겨주며 연기 조언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 들어가면서 차태현 선배님은 이영 역할에 잘 어울린다고 잘될 거라고 해주셨어요. 첫 회에 카메오 출연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요. (송)중기 형은 제가 자신감 없어할 때 힘내라고 응원해주셨어요. 기회가 되면 중기 형과 꼭 작품 속에서 형제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흥행 꽃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박보검의 차기작에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성공을 거둔 만큼 박보검을 향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흥행보증수표’로 우뚝 서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박보검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대중의 기대치를 위해 차기작에 신중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영화 ‘나의 소녀시대’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풋풋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현대극에서 해보고 싶어요.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고요. 개연성이 있고, 제가 잘 표현하고, 잘 할 수 있는 악역이요. 무조건적인 악역은 제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요.”
비주얼과 연기력을 모두 검증을 받은 어엿한 데뷔 6년차 배우 박보검. 그는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쌓고 있는 중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 이후 그의 행보에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표면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위로, 희망을 주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배우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아요. 축복 받은 직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