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킹`에서 정우성이 분한 한강식은 이십 대 초반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차세대 검사장으로 주목받는 엘리트다. 부와 명예, 그에 따른 권력까지 거머쥔,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그는 누가 봐도 근사하지만, 사실은 잔인하고 냉혹한 인물이다.
한강식을 연기한 정우성은 한강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신선한 발언이었다. 보통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공감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우성은 그 반대로 접근했다. 그는 한강식을 증오하는 만큼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연기했다. 애정보다 증오로 캐릭터에 다가간 것이다.
말투부터 스타일까지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한강식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정우성은 그런 한강식을 치졸함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최근 정우성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가치관과 시국발언등을 보면 부조리하고 비도덕적인 캐릭터를 "대놓고" 싫어하는 그의 모습이 일견 납득되기도 한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영화 `더킹`에 출연한 이유부터 현 시국에 대한 솔직한 발언까지 들어봤다.
비리 검사 역할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했나.
사실 이해가 안 된다. 사람들은 환경에 연약하다. 각자 입장에서는 정당성이 있겠지만, 본질적 순수함을 잃고 타협하는 일도 있다. 결국 우리가 눈감고 귀 막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회는 썩는다. 이 영화는 그런 선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부패한 검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인맥을 조심해야한다. 인맥 때문에 타협을 하게 되고 부패가 시작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99%의 검사는 좋은 검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소수의 1%의 삐딱한 사람들이 상위 조직 계층에 있다면 99%의 정당하고 바른 의지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해지겠나. 특정 인물보다는 그런 시대를 살면서 권력 조직의 삐뚤어진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
한강식과 태수(조인성)는 사회와 타협하지 않나.
나는 내가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꾸 사회와 타협을 하게 되는데, 타협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무엇을 위한 타협인지, 얼마나 정당한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한강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나.
한강식을 무너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촬영했다. 한강식이 자기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품위 있고, 우아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굉장히 추악하다. 저는 그를 무너뜨리고 싶었고, 관객은 그런 저를 보면서 비웃을 수 있길 바랐다.
영화가 너무 교훈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 영화는 희망적인 판타지를 던져주는데 그건 사실 고문이에요. 가끔은 세상을 직시하게끔 하는 메시지도 필요하죠. 생계에 매몰돼 시대가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문제의식이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도 편안히 정리되는 것 아닌가요? `정치를 외면한 큰 대가는 가장 추악한 이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라는 글귀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처럼 압박 때문에 시대 흐름을 또 외면한다면 다음 세대는 희망이 없는 것 아닐까요?
조인성이 정우성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자신을 동경하던 후배들과 연기하는 기분이 어떤가.
현장에서는 동료일 뿐이다. 그들이 나를 동경했던 마음이 있다면 현장에서 내가 더 바람직한 선배가 되려고 노력한다. 내가 그들을 더 동경한다.
함께 촬영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배려심 많기로 유명하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혼자 사회에 나왔다. 너무나 없었기 때문에 뭐 하나 가지는 게 너무 좋았다. 나 스스로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어서, 함께 하는 사람과 그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하다.
본인 관련 기사에는 `갈수록 잘생겨진다`는 댓글이 달린다는 거, 알고 있나.
진실과 사실을 담고 있는 중요한 댓글이다. (웃음)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 제일 큰 고민이 `정우성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피부과를 가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술 담배를 줄여야 하는데...
관객이 어떻게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나.
풍자와 해학이 담긴 마당놀이처럼 봐줬으면 좋겠다. 블랙코미디다. 유쾌하게 그린 이 작품으로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면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국민이고, 영화의 완성은 관객이다.
사진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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