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옷을 하나하나 벗으며 췄던 승무가 정말 섹시했어요"[인터뷰]

입력 2017-06-16 11:14  


`역적`의 장녹수는 기존의 타 배우들이 연기했던 장녹수와 달랐다. 30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바탕으로 장녹수가 궁에 들어오기 전 민가에서 살던 시절까지 재조명했다. 장녹수가 어째서 악의 길을 걷게 되는지 하나씩 전사를 쌓아갔고, 때문에 장녹수의 사연에 대해 시청자들이 알 수 있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캐릭터여서 오래도록 묵혀뒀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카드를 빼어 들었고, 완벽했다. 이토록 장녹수를 잘 연기한 배우가 있었을까.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 출연한 이하늬 얘기다. 국악과 출신인 이하늬에게 장녹수은 인생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그녀를 만나봤다.
Q. 드라마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A. 정말 큰 숙제를 마친 것 같은 기분이다. `역적` 같이 한 배우들도 그렇고 사력을 다해서 촬영한 스텝도 정말 보고 싶다. 현장의 기운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여운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Q. 장녹수를 연기한 소감은?
A. 정말 감사함이 크다. 내가 한 작품을 끝냈다는 만족감도 크고 장녹수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는 만족감도 크다. 후회없이 했다. 내가 가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던 거라 후회도 없고 만족한다.
Q. 장녹수를 너무 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묵혀뒀다고 하더라. 이번에 해보니까 어땠나?
A. 드라마가 내 학예회는 아니다. 장녹수 자체가 실존 예인이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녹수를 그렇게 다뤘던 적이 없다. 여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장녹수의 아티스트 매력을 다루자고 했다. 아끼다가 똥 되기 바로 직전에 한 것 같아서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양반 남성들이 장녹수를 희롱하려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도 그런 것을 느껴봤었기 때문에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됐다.

Q. 이하늬가 히든카드로 장녹수를 묵혀둔 이유가 드라마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히 연산에게 어필할 때 춘 승무가 인상적이었다. 준비한 과정이 궁금하다.
A. 작가님이 대본에 `잘하는 것을 알아서 추시오`라고 적어줬다. 알아서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무용 하나로 내 남자로 만든다는 것은 어렵고도 대단한 일이다. 그 정도의 것을 하고 싶었다. 그게 승무였다. 가장 정제되고 우리나라의 모든 선의 미학이 들어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혼자 예술을 한다고 자위를 하는 장르가 아니다.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다. 그 한 장면을 다섯, 여섯 시간 찍었다. 편집도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잘 춰서가 아니라 다른 스텝들의 공이다. 시청자들도 그걸 느꼈던 것 같다. 추다가 하나 정도 옷을 벗는다. 그 부분도 정말 섹시했던 것 같다.
Q. 장구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A. 유니버스 대회에 나갔을 때 썼던 장구를 재구성 한 거다. 다시 꺼내 쓰는데 감회가 새롭더라. 당시 민속의상상이 나는 제일 중요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복식을 어떻게 가져갈 건가` 고민을 많이 했다. 장구춤이라는 것은 다이나믹하면서 여성이 추는 최고의 춤이다. 그래서 나는 장구춤을 굉장히 좋아한다.
Q. 길동이랑 한 키스 vs 연산이랑 한 키스 중에 뭐가 더 좋았나?
A. 좋고 말고를 생각할 수가 있나? 너무 결이 다른 키스신이었다. 다음 작품에서는 좀 가벼운 키스신을 하고 싶다. 길동이랑은 공화의 모든 아픔을 드러낸 후에 한 화답의 키스였다. 연산은 눈물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짠내나는 키스였다.
Q. 역적이 이하늬 연기 인생에 갖는 의미는 뭔가?
A. 이번 상반기에 한 작품이 나에게 완전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연기라는 게 정말 어려운 거구나를 느꼈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작품을 여러 개를 하니까 정신 못 차리게 확장된 느낌이 있다. 너무 탁월한 감독님과 작업을 한 게 큰 행운이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건드려줘서 좋았다. 연기 깊이를 확장시켜준 것 같다.

Q. 드라마가 끝나서 피곤할 법도 한데 굉장히 기운 있어 보인다. 이하늬 하면 항상 활발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A. 영혼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갈수록 우울한 에너지가 세진다. 앞으로 이별할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원래 알던 슬픔의 정서보다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감성과 감정을 쓰는 직종이기도 하니까 그런 걸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올해 더 많이 하게 됐다.
Q. 체력 관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A. 맞다. 배우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몸 관리를 잘 못 하면 그것은 직업에 대한 직무유기가 된다. 배우는 영혼을 쪼개서 쓰는 직업이다. 그동안 영혼에 대한 케어를 하지 않았는데 `나도 언제든지 힘들 수 있는 하찮은 인간이구나`를 느낀 것 같다. 영혼에 축적되는 데미지는 나중에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배우 일을 한 지 11년이다. 그동안 안 괜찮았던 것을 괜찮다고 했던 것이 탈이 나더라. 그래서 이제는 안 괜찮은 거는 안 괜찮다고 한다. 영혼을 잘 정화하고 좋은 에너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Q.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가? 어떻게 푸나?
A. 정적으로 풀기도 하고 동적으로 풀기도 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이 정말 힐링하는 시기다. 강아지는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조용히 차를 내려 먹기도 한다. 공복에 차를 마시면 참 좋다. 차가 내려지는 것 보고 생각 정리하고 그런 동적인 취미가 생겼다. 일이 힘들고 복잡할수록 비워내는 취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일이 없으면 동적인 취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거기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Q. 올해 계획은?
A. 하반기에 영화가 하나 추석에 개봉한다. 내가 완전 돌아이로 나온다. 최민식 선배랑 찍은 `침묵`도 개봉한다. 두 작품 다 재밌게 밀도 있게 작업을 했다. 기다려진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 여행도 하고 그렇게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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