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빠르기는 생각의 속도를 반영한다. 생각이 갈무리되지 않은 채 나오는 말은 자주 끊어지거나 버벅인다.
블록체인이라는 생소한 개념과 회사의 비전을 아울러 설명하는 김종환 블로코 대표의 말은 무척 빨랐으나 끊김이 없었다. 말을 따라 타자를 치려다 이내 포기했다. 아무래도 녹음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언어는 잘 훈련되어 있었다. 회사에 오래 머문 듯 후드 차림에 머리는 초췌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그의 곁에는 중학교 동창이자 블로코의 핵심 기술을 책임지는 김원범 대표가 있다.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처럼, 동갑내기 친구가 뭉쳐서 만든 블로코는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이다. 이 스타트업이 잘 익은 사과가 될 수 있을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블로코는 2017년 현재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있는 대기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타트업이다.
■`블로코`를 있게 한 기술, 블록체인은 무엇인가
스타트업 `블로코`의 가능성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이들이 가진 기술의 기반인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나의 계좌로 1,000만원을 송금하는 일을 가정하자. 은행이라는 기존 시스템을 이용하게 되면 돈이 이 계좌에서 저 계좌로 옮겨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래 장부는 은행 서버가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우 기분좋지 않을 일을 당할 가능성이 생긴다. 해커가 은행 서버에 침입해서 거래 장부를 위조해 계좌의 잔고를 0으로 만들고, 그만큼을 훔쳐가는 것이다. 최근 들어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한 지능형 범죄다.
블록체인은 거래 장부를 은행 서버 한 곳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장부를 오히려 여러 개 만들어서 온라인 네트워크에 뿌리는 개념이다. 그리고 송금하거나 할 때마다 장부 하나가 아니라 모든 장부에 같은 내용을 기록한다. 이렇게 되면 해커가 서버 한 곳에 침입해서 장부 하나를 위조한다고 해도, 금방 들통이 나게 된다. 위조되지 않은 온라인상의 다른 장부들이, 실시간으로 위조된 거래 내역을 검증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블록체인은 이론상 해킹이 불가능한 보안 기술로 평가받는다. 거래 내역들을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 결제 뿐 아니라 우리 산업의 많은 영역들에 이용될 수 있을 차세대 신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 최근에 유명해진 가상화폐가 이 블록체인 플랫폼을 토대로 운영되는 중이다.
■삼성SDS·롯데카드 등 대기업이 주목하는 IT 스타트업
블로코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론상 완벽한 보안성과 넓은 적용 가능성으로 많은 기업들이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술적인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블로코는 플랫폼 `코인스택` 등을 통해 블록체인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치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안드로이드 또는 iOS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하듯, 블로코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코인스택이라고 불리는 제품들을 공급하는 스타트업이다.
현재 사업 모델은 두 가지다. 블로코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코인스택`을 통한 데이터의 사용량을 책정해서 과금하거나, 특정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연간 또는 월간 사용료를 받는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적용되는 보안 기술보다도 안전하고,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것이 블로코가 내다보는 사업 성장성의 요인이다. 플랫폼을 기업들에 판매해서 돈을 버는 건데, 이 스타트업은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기 전부터 개발에 뛰어들어서 기술도 축적되어 있다. 그러니까 `선점 효과`가 있어서 대기업으로서도 자체 개발보다 이들의 플랫폼을 구매하거나 협업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삼성SDS는 블로코에 20억원 규모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내외 신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업계 전체로 봤을 때 블로코와의 협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카드사다. 금융 결제 시스템에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기존 수수료를 내야했었던 `밴사`와의 관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때문이다. 밴사란, 신용카드사와 가맹점 사이에 통신망을 구축해 신용카드 결제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로 상장사 가운데는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정보통신 등이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면 쉽게 말해서 카드사 입장에서는 밴사에 낼 수수료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 롯데카드는 블로코의 솔루션을 이용해 블록체인 기반 결제인증 서비스를 내놓았다.
■선거까지 바꾼다...블록체인의 파괴적 혁신 가능성
블록체인 플랫폼은 금융결제 시스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산업 뿐 아니라 민주주의 인프라를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다. 김종환 대표는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블록체인을 통해 부정 개입 의혹이 없는 선거의 판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에게 몇 표를 제공을 할 것인가, 표들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집계는 언제 할 것이고, 투표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할 것인가라는 다양한 형태의 규칙들을 블록체인에 저장을 해 둠으로써 이를 마치 비트코인을 운용하듯이 - 김 대표는 이를 `투표코인`이라고 했다 - 생태계들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투표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 블록체인의 룰을 확인함으로써 우리가 정말 약속했던 원칙대로 투표가 이뤄지고 있는지, 부정 시도가 있었는지 등을 검증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과 블록체인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해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고 했다. 스마트폰이 처음 국내 시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의심했다.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은 PDA와 기존 핸드폰에서 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처음엔 삼성전자마저도 그렇게 예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파괴적 혁신`을 일으켰다. 블록체인도, 그리고 블록체인 스타트업도 이와 다르지 않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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