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가죽공방이 아니다. 크레마레인은 국내 최고의 가죽 시곗줄을 제작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시계스트랩 전문 브랜드다. 중고 명품샵이 밀집한 압구정 거리 한 복판에서 실력 하나만으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크레마레인을 거쳐간 시계 수만 해도 2,000개에 가깝다. 시계 이야기만 나오면 어린아이처럼 꿈을 꾸듯 말하는 김민수 크레마레인 대표를 만나 덕후가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 김민수 크레마레인 대표)
◆ `1,000만 원 가죽가방` 직접 만든 대학생
2년 전 시곗줄 전문 브랜드 크레마레인을 창업한 김 대표는 원래 외국계 전자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담당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온 그는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일반 회사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인생을 꿈꿨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곗줄은 자신의 오랜 취미생활인 가죽공예의 한 종류에 불과했다.
“가죽공예를 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해요. 군대 제대하고 나서 가방을 하나 사려고 보니 마음에 드는 가방이 별로 없는 거에요. 그 때 눈에 들어온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가격이 1,000만 원이 넘는 에르메스 가방이었던 거죠. 가방은 가지고 싶은데 돈은 없으니 방법이 있나요. 한 번 만들어보기로 한 거죠.”
김 대표가 군대를 전역한 시기는 8년 전인 2009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유럽식 가죽 제조법이 국내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다. 대부분 가죽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작업인 카빙기법으로 가죽을 다뤘다. 에르메스와 같은 가방을 가지기 위해선 적합하지 않은 공법이었다. 수소문 끝에 김 대표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죽학교 ‘스쿠올라 델 꾸오이오’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전문가를 찾았다. 그리고 그 밑에서 꼬박 2년을 배웠다.
"2년 동안 선생님과 동고동락하며 한국에서 가죽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 분들을 보면서 막연히 나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동경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언젠간 가죽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진 = 크레마레인)
◆ 3년 간의 회사생활…놓지 않은 가죽 사랑
3년 간 다니던 회사를 뒤로 하고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가죽에 대한 미련, 내 사업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죽공예는 취미삼아 놓지 않고 있었어요. 업계 사람들과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고 그러다 보니 가죽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거죠.”
하지만 단순히 가죽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가죽은 다루기 쉽고 또 국내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공장이 있고 미싱할 인력만 있다면 더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뽑아낼 수 있는 곳이 널려있던 셈이다.
“제가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부분은 소비자들의 니즈가 확실한 곳을 찾는 것이었어요. 단순한 가죽공방을 하고 싶다면 가죽이나 지갑, 벨트 이런 대중적인 제품들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의 브랜드를 키워보는 것이었어요.”
김 대표가 고민 끝에 생각해낸 제품이 바로 시곗줄이었다. 스스로 시계에 대해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가죽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마음이 맞던 회사 동기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곗줄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진 = 크레마레인)
◆ 국내 유일무이한 시곗줄 데이터
크레마레인이 선보이는 시곗줄의 가격대는 19만 원에서 39만 원 사이로 웬만한 손목시계만큼 비싸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지금까지 크레마레인을 찾은 고객 수는 2천 명에 달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2년 밖에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김 대표는 크레마레인의 성공 비결을 시곗줄 분야에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전문성이라고 이야기 한다.
“시계는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 시곗줄 바꾸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계를 분해하고 결합하기 위해선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특징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그 방식이 시계마다 달라 이걸 업으로 삼기 위해선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가 돼야만 하는 거죠.”
문제는 사업 초기 시계에 대한 지식을 정리해놓은 자료가 국내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 명품 시계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인 `홍성시계`를 찾았다. 시계 수리용 도구 사용법과 시계에 대한 기본기는 그 곳에서 배웠다.
하지만 시곗줄은 시계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시계마다 시곗줄 결속방식이 달랐고 시계와 어울리는 디자인은 제각각이었다. 김 대표는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정리해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시곗줄 데이터를 만들었다.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이 데이터는 크레마레인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됐다.
"시계를 분해하는 방법과 시곗줄을 교체하는 방법을 저만 아는 게 아니라 제작하는 친구들 전부 다 공유를 해야 해요. 그래야 이 친구들도 한 명의 전문가로 인정받게 되고 그게 회사 경쟁력으로 이어지거든요."
(▲사진 = 크레마레인 제공)
◆ 세련된 어른들이 찾는 크레마레인
크레마레인은 맞춤형 시곗줄을 지향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곗줄을 맞춰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가진 시계와 가장 잘 맞는 시곗줄을 추천하고 제작해 준다는 점이다. 김 대표의 이 같은 전략은 크레마레인을 소위 경제력 있고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로 만들었다.
소비자들은 고가의 시계에 맞는 시곗줄을 원하다 보니 까다롭게 따질 수밖에 없다. 보통은 시곗줄을 맞추기 위해 제품을 구매한 매장을 찾지만 마음에 드는 시곗줄을 받기 위해선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린다. 크레마레인은 시곗줄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은 줄이고 품질은 높였다. 빨리 받아 볼 수 있는데다가 내 맘에 쏙 드는 시곗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 "정말 좋아한다면 책 한 권은 써야죠"
김 대표는 시곗줄에 있어서 만큼은 국내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전자회사를 다니던 시절 일본 출장을 갈 때면 항상 서점에 들렀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서점을 가면 시계와 관련된 책들이 수십 수백권이 깔려있어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오타쿠적인 문화가 발달돼 있잖아요. 시계에도 그 문화가 적용돼요. 이를테면 오메가라는 시계 브랜드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가 정리된 책이 출판되는 거에요. 오메가 뿐 아니라 브랜드와 모델 별로 정리된 정보를 사전처럼 얻을 수 있는셈이죠."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일본에서의 이런 경험은 자신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고 말한다. 단지 좋아하는 것 만으로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로 사업을 하려면 어설프게 좋아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세계 최고는 못되더라도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각오는 필수에요. 스스로 내가 이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제가 물건에 대해 100을 안다면 실제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40 정도에요. 결국 좋은 물건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스스로 많이 아는 수밖에 없어요. 좋아한다면 책 한 권 쓸 각오는 돼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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