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승호가 ‘군주’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말이 필요 없는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자랑했다.
유승호는 지난 13일 인기리에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군주’는 조선 팔도의 물을 사유해 강력한 부와 권력을 얻은 조직 편수회와 맞서 싸우는 왕세자의 의로운 사투를 그린 드라마로, 유승호는 극중 세자 이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아쉬움도 있지만 연기적으로나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 홀가분해요. 배우로서 조금 더 작은 것까지 다 표현하긴 했어야 했는데, 7개월을 하다 보니까 후반부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해이해지고 지친 것이 사실이었어요. 조금만 더 집중해서 잘 만들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에요.”
누구보다 일찍 ‘군주’에 합류한 유승호는 그야말로 하드캐리한 활약을 보여줬다. 가면을 쓴 채 얼굴을 감추고 살 수밖에 없던 세자 이선의 비극부터 진정한 군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했다.
“가면 연기가 진짜 어려웠어요. 초반에만 가면을 쓰고 후반엔 천민 이선이 쓰는데 눈과 입 주변을 제외하고 모두 가면으로 가려지죠. 표정으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눈과 입만 보이다 보니까 도저히 감정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200%, 300% 더 오버해서 표출해야 가면 뒤 표정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더 오버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군주’는 유승호와 김소현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의 연기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유승호와 김소현은 매순간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선가은(이선, 한가은 커플 줄임말) 케미를 뽐냈다. 유승호는 애절한 눈빛과 대사로 김소현을 향한 깊은 사랑을 표현했다. 마지막회에서 유승호는 “오랜 세월 달을 기다려 함께 하게 된 해와 달처럼 이제 항상 너와 함께하고 싶구나. 내 영혼이 닿는 깊이만큼 널 은애한다. 언젠가 하늘의 부름을 받더라도 죽어서도 널 은애할 것이다”라며 달달한 고백으로 로맨스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자칫 무거울 수 있었던 극을 달달한 분위기로 살짝 녹여내 스토리의 중심을 잡았다.
“제가 멜로가 굉장히 약해요. 멜로 연기를 할 때 대사를 한다거나 상대방의 눈을 봤을 때 설레는 게 생각보다 공감이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슬픈 감정을 연기할 때, 상대방의 대사를 듣고 눈을 보면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그러다 보니까 멜로 연기 보다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멜로도 하긴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요. (김)소현이와 함께 작품을 하게 돼 정말 좋았어요. 소현이와는 직접적으로 작품을 했던 건 아니지만 아역 시절을 겪었다는 자체만으로 끈끈하게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연기를 워낙 흠 잡을 데 없이 잘하는 친구예요. 제가 제작발표회 때 ‘누나 같다’고 말실수를 했는데 그동안 파트너가 연상의 여배우들이었어요. 그분들과 촬영할 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죠. 이제는 내가 오빠로서 내가 이끌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찍다 보니까 제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너무 스스로 잘했고, 지금까지 했던 연상의 파트너처럼 믿고 따라도 되는 동료 파트너로서 그래서 누나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군주’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선 유승호는 대목(허준호 분), 이선(엘 분)과 갈등에서도 빛났다. 유승호는 허준호의 악행을 헤쳐 나가며 진정한 군주로 성장한다. 이 과정 속에서 좌절하고, 쓰러지는 군주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줬다. 엘과의 갈등은 극을 보는 재미였다. 한가은(김소현 분)을 향한 두 남자의 사랑이 결국 왕의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됐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엘 형과 만났는데, 감히 형한테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경험을 이쪽에서 더 해본 배우로서 ‘힘든 만큼 웃으면서 서로서로 위하면서 작품을 좋은 작품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엘 형은 배우 출신이 아닌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제가 창피하더라고요.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유승호는 ‘군주’를 통해 애절한 눈물 연기부터 액션, 로맨스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가 소화한 세자 이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무엇이든 버릴 수 있었고, 백성을 위해선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리더였다. 현시대상황에 필요한 리더상을 대변, 공감하게 만들면서 호감 지수를 높였다.
“세자 이선이 계속 백성을 위한다고 얘기해요. 백성이 있는 곳에 발을 두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자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님의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백성이 얘기하면 들어줄 지도자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위로를 받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 것을 표현하려는 작가님의 의도가 아닐까 싶었어요.”
‘군주’의 강점은 사극 경험이 풍부한 유승호였다.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 어린 이순신 역을, ‘왕과 나’(2007)에서 어린 성종 역을, ‘태왕사신기’(2007)에서 어린 담덕 역을, ‘선덕여왕’(2009)에서 김춘추 역을, ‘무사 백동수’(2011)에서 여운 역을, ‘아랑 사또전’(2012)에서 옥황사제 역을 맡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했다. 영화 ‘조선마술사’(2015)와 ‘봉이 김선달’(2016)에서는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사극을 많이 찍었어요. 이번에도 사극인 데다 이전 성적이 안 좋아서 잘 될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반응이 괜찮았어요. 사실 사극을 엄청 좋아해서 사극에 출연한 것이 아니었어요. 멜로나 다른 장르보다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려 했어요.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멍청하기도 하고 의미가 없던 선택이긴 했는데 다행히도 이번엔 결과가 많이 좋아서 다음 작품은 용기를 내서 다른 장르에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향후 몇 년간은 사극이 힘들 것 같아서 다음 작품은 무조건 현대극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유승호는 지난해 2월 종영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이어 ‘군주’까지 연이어 흥행하면서 안방극장 흥행 보증수표로 우뚝 섰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시청률 20%를 웃돌며 종영했고, ‘군주’는 10% 중반 대 시청률로 꾸준한 고정 시청층을 확보, 흔들림 없이 마침표를 찍었다. 군 전역 후 영화 ‘조선마술사’, ‘봉이 김선달’에 연속 도전했지만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작품이 흥행이 안 되니까 나 때문에 영화가 잘못된 것 같아 죄송스러웠어요. 이번 작품은 뭔가 ‘유승호’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 전엔 사실 저조차도 저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꼈어요. 배우로서 덜 완성됐다고 느끼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시청자 분들에게 `유승호라는 배우가 이렇습니다`라고 확인시켜줄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군주’ 하면서 자신감은 많이 회복됐어요. 영화를 하고 싶어요. 영화를 하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급하지 않아요. 그러나 피드백이 없죠. 완성을 하고 난 뒤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이 겁이 나요. 조금 더 캐릭터를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도전해 볼게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란 ‘국민 남동생’은 어느덧 어엿한 청년이 됐다. 그리고 그 청년은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린다. 귀엽고, 풋풋한 매력에 남자다운 카리스마까지 더해졌으니 시청자들이 설렐 만하다.
“다음 작품은 지금까지 선을 많이 해서 악을 하고 싶어요. 선을 계속한다면 비슷한 패턴의 역할을 할 것 같아요. 계획은 아무 것도 없어요. 보고 있는 작품도 없어요. 작품이 잘 돼서 돈, 인기, 명예를 얻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거를 얻기 위해 연기를 하지는 않아요. 연기를 먼저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배우가 되고 싶죠.”
(사진제공 = 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