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잭슨홀 미팅 이후 세계 증시 참가자의 관심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에서 ‘보유자산 매각’으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보유자산 매각을 가능한 빨리 추진키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보유자산 매각을 추진하면 금리인상보다 시중 유동성을 확실하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9년 전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당한 직후 Fed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추진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란 시장과 금융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하는 비상대책을 말한다. Fed의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등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미국은 금융위기 극복이 마무리 단계에 놓여 있고 경기도 회복되고 있다. Fed의 양대 책무도 실업률은 완전고용수준(4.8∼5.1%)에 도달한지도 오래됐다. 근원PCE(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 상승률도 조만간 목표선인 2%를 넘어설 것으로 Fed는 보고 있다.
여건이 바뀌면 통화정책도 변경돼야 한다. 출구전략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아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많이 알려진 데로 출구전략을 ‘위기에서 빠져 나오는 대책’으로 이해된다면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해 왔던 정책이 모두 해당된다. 이 때문에 밴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위기 이후 상황을 겨냥한 선제정책’으로 그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냉키 개념을 정립한다면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과 추진하는 시기는 구별된다. 모든 정책의 시차를 감안하면 위기가 마무리돼 가는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논의하고 마련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됐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워낙 강도가 있었던 만큼 위기 극복 이후 상황이 닥쳐서 마련할 경우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립 서비스를 통해 시장과 소통하는 사전단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출구전략이 마련됐다고 해서 곧바로 추진한다면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경험국의 교훈이다. 이제 막 회복의 ‘싹이 돋는 단계(green shoots)’에서 한 나라 경제의 거름에 해당하는 돈을 거둬들일 경우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 1980년대 미국경제 스테그플레이션, 1990년대 일본경제 잃어버린 10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선제적으로 마련된 출구전략을 언제 추진하느냐를 결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추진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으나 전기비와 전년 동기비로 산출되는 성장률이 2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서고 그 수준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때를 택해 추진해야 한다. 이 경우도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이 우려될 때이다.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국내 증시에서 인식된 것처럼 기준금리를 곧바로 올리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화정책 수단을 ‘보편적(일반적)’ 혹은 ‘질적(선별적)’으로 구분할 때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 개별 경제주체가 처한 사정과 책임에 관계없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경우 경제 전반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거론되는 출구전략은 과잉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번에는 문제가 안 됨)과 자산시장에 낄 거품 우려를 불식시키는 곳에 목표를 둬야 한다. 보통 때처럼 경기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는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배경에서다.
Fed의 출구전략도 이 수순을 밟고 있다. 2013년 5월말 버냉키 전 의장이 출구전략 추진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사전단계인 립 서비스다. 그 후 1년 반이 지난 2014년 10월에 양적완화(QE)를 종료시킨 이후 201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출구전략 추진 단계 상 가장 중요한 ‘금리인상’에서 ’보유자산 매각‘으로 언제 넘어 오느냐는 ‘금리 체계(interest system)’가 얼마나 잘 작동되느냐에 달려 있다. 금리 체계가 잘 작동돼 자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만 있으면 기준금리를 Fed의 목표금리인 중립금리 3%가 도달할 때까지 보유자산 매각 조치를 늦춰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에도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 현상이 나타날 때는 자산거품이 심해져 보유자산 매각조치를 앞당겨야 한다. 반대로 기준금리 인상폭보다 시장금리가 더 오르는 ‘옐런 수수께끼(Ellen’s conundrum)’ 현상이 발생할 경우 그 시기를 늦춰야 ‘에클스 실수(Eccle’s failure·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경기를 망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
2015년 12월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에도 미국 증시는 ‘랠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거침없이 오르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거품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미국 증시 거품 논쟁은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명했던 빌 그로스와 워런 버핏 간 ‘주식숭배(cult of equities) 종료’ 논쟁이다.
2014년 8월에는 세계적인 석학 간에 벌어졌다.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CAPE(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가 26배로, 20세기 이후 평균수준인 15배를 상회해 거품이 끼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제라미 시겔 와튼 스쿨 교수는 주가 결정에 미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그 후 잊혀져가던 거품 논쟁이 최근에는 투자 구루와 석학 간에 벌어지고 있어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년 전부터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해온 실러 교수는 지금은 CAPE가 30배에 도달해 적정수준 20배를 훨씬 웃돈다고 경고했다. 반면 트럼프 랠리의 최대 승자인 버핏은 장기적 관점에서 주식을 더 살 것을 권하고 있다.
Fed의 가치모형(FVM=12개월 선행이익률÷10년물 국채금리)으로 현재 주가수준(S&P500지수 기준)을 평가해 보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은 2.1배에 근접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게 올라간 지 오래됐다. 3월 FOMC 의사록에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자산시장에 낀 거품을 우려했던 것도 이 이유에서다. 이때 보유자산 매각조치를 지연시킬 경우 ‘후속 위기(after crisis)’ 우려가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Fed의 금리인상경로인 ‘3·3·3 계획’에 따라 중립금리 3%에 도달하는 때가 2019년 말이다. Fed가 추정한 통화정책 시차 1년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보유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면 그 시기는 ‘내년 말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월가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7월 FOMC 의사록 발표 이후 시장의 콘센서스인 다음 달에 추진한다면 1년 이상 앞당겨지는 셈이다.
보유자산 매각 시기가 결정되면 그 규모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를 확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Fed의 보유자산 적정규모에 달려있다. 출구전략 개념에 충실해 보유자산 규모를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조 달러로 돌려놓는다면 4조 5천억 달러까지 늘어난 보유자산을 무려 3조 5천억 달러를 인위적으로 매각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될 수 있는 규모로 이 방식대로 추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Fed의 보유자산 적정규모는 기관에 따라 크게 차이가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2조 5천억 달러에서 3조 5천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1조 달러에서 2조 달러를 매각해야 된다. 만기도래 자연감소분만으로 안 되고 1조 달러 이상 인위적은 매각이 수반될 것으로 보여 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다.
버냉키 전 의장은 유동자산에 대한 민간수요가 크고 통화정책 수행방식 변화 등을 감안해 주장하는 4조 달러를 가져는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옐런 의장은 버냉키 전 의장 시절 때 부의장으로 통화정책 실무를 총괄해 왔다. 매각분 5천억 달러는 만기도래 자연감소분만으로 맞출 수 있어 1차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다.
통화정책 전달과정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에 따라 다르지만 앞으로 Fed는 금리인상보다 두 배 이상의 긴축효과가 큰 보유자산 매각 시기와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보유자산 매각도 출구전략의 한 단계인 이상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본질은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2017 잭슨홀 미팅 이후 시장 참여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보유자산 매각조치는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국내 주식시장 참여자의 관심도 ‘금리인상’에서 ‘자산매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보다 후자는 긴축 효과가 큰 만큼 선제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해 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부는 ‘뒤늦은 대세 상승론’과 ‘원·달러 환율 급락설’은 경계해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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