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반기는’ 노조, ‘난감한’ 사측

입력 2017-08-31 11:58  

기아차 통상임금 1심 노조 승리…법원 "4천223억 지급하라"
기아차 통상임금 6년 소송 이긴 노조 "노동자 권리보호 계기되길"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금액 감내 어려워…항소심 기대"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로 노조가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사측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법원이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천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 측은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계 현안이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노조에 유리한 선고 결과가 나오면서 기아차 노사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천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노조 측이 요구한 정기상여금과 중식대, 일비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사측은 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수당의 미지급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노조 측이 주장한 근로 시간 수 가운데 일부는 인정하지 않았고, 휴일 근로에 대한 연장근로가산 수당 청구 및 특근수당 추가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기아차 측이 2011년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추가 금액으로 원금 3천126억원, 지연이자 1천97억원 등 총 4천223억원을 인정했다. 이는 노조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의 38.7%에 해당하는 액수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로 기아차 측이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회사에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5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 순이익을 거뒀고 당기 순손실은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또 같은 기간 매년 1조에서 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했고,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등 재정·경영 상태와 매출 실적 등이 나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및 미국의 통상 압력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보이지만 기아차가 이에 관한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아차가 2008년부터 매년 근로자 모두에게 경영성과급을 지급한 점을 보면 재판부가 인용한 원리금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이를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상호 신뢰를 기초로 노사 합의를 이뤄온 관계를 고려하면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가 발생하도록 방관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며 "이런 이유로 사측의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아차 근로자들은 2011년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이후 2014년 10월에는 13명의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를 대표해서 소송을 냈다.

2011년 소송을 낸 노조 측이 회사에 청구한 임금 차액 등은 총 6천588억 원이고, 이자 4천338억 원을 더하면 총액은 1조926억 원이었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최근 3년치 임금이다.

노조는 청구액을 지급해도 회사 경영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판례로 제시된 기준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 주장대로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넓히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최대 3조원대에 달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것은 노사 합의에 따른 조치인데 이를 깨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맞섰다.

노사 간의 해묵은 쟁점인 통상임금에 대해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근로자 및 퇴직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 간 합의했다 해도 그 합의는 효력이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이 경우라도 사측에 예기치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따라 추가 수당 요구는 용인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신의칙이란 `법률관계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민법의 기본 원칙이자 근대 사법(私法)의 대원칙이다. 적정한 선에서 서로 타협하고 양보해 결론을 내리라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에서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 소송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이번 판결이 완성차 업계는 물론 다른 업계의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기아자동차 노조 측은 6년간 끌어온 통상임금 1심 판결 직후 "노동자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가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천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한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김성락 기아차 노조 지부장은 "사법부가 그동안 노조의 요구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며 선고 결과를 반겼다.

김 지부장은 "통상임금 소송은 그동안 잘못된 임금 계산으로 장기간 노동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시작됐다"며 "오늘 판결이 (노사) 분쟁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조 측 변론을 맡은 김기덕 변호사는 재판부가 `추가 수당 요구는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가장 우려했던 것이 신의칙 부분"이라며 "다행히 재판부가 (회사의) 경영상태를 엄격하게 판단해 (노동자의) 임금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과거 소급분에 대해서는 신의칙에 관해 명확하지 못했다"며 "이번 판결로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송영석 변호사 역시 "사측이 1심 판결을 이유로 노사 대화에 소극적으로 임했지만, 앞으로 전향적으로 대화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번 판결을 기초로 노사가 원만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기아자동차는 곧바로 항소 의사를 밝혔다. 기아차는 선고 직후 입장 자료를 통해 "청구금액 대비 부담이 감액되기는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특히 신의칙(신의성실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아차는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 적절한 판단을 기대한다"며 "1심 판결이 향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아차 통상임금 이미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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