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의 자산매각 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신흥국에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자금이 추가로 유입되는 것보다 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한 자금이탈은 외환·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며, 외환·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는 또 다른 자금이탈을 유발하는 이른바 나선형 악순환 위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주요국의 경험적 사례를 보면 급격한 자금이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환위기, 금융위기 또는 국가채무위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위기로 발전된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으나 급격한 자금이탈은 특정국가의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내부요인보다 외부요인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ling expectation)로 설명하는 시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흐름이 역전되면서 급격한 자금이탈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인접국가로 전염된다고 봤다. 태생적 한계(original sin)를 갖고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금융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이 이론의 시각에 따라 파악하려는 경향들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외자이탈을 경험한 국가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 특징은 위기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급격한 외자이탈이 발생한 국가들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CDS 프리미엄과 해외자본 유출입, 환율 움직임과의 관계를 보면 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2배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외자유입이 감소된다. 변동성이 더 심해져 장기평균치에서 4배를 벗어나면 CDS 프리미엄이 이전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쏠림현상이 발생한다. 비슷한 시점에서 외자순유입 규모도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2배 이상 감소하는 이른바 `급격한 이탈단계‘에 진입한다.
이때부터 위기발생국의 통화 가치는 절하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당시에는 절상되다가 해외자본 유입이 갑자기 중단 이후 곧바로 대량 이탈로 급진전되는 과정에서 통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간 자금흐름이 투기적인 속성이 강한 자금이 의해 주도됨에 따라 환율변동성이 심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기별로는 `급격한 외자이탈` 발생국 통화가치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3배를 벗어나거나 해당연도 절하율이 직전년도의 절하율을 10% 포인트 상회할 경우 이전보다 빨라지는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외환위기로 악화된다. 이때 위기 발생국은 외환보유액을 풀어 외환시장 안정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인식되면 CDS 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는 진정국면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위기 발생국들의 외화유동성에 의심이 갈 경우 투기성 자본들의 공격대상이 되면서 국제통화기금의 유동성 지원 등과 같은 계기가 마련되기까지 혼란국면이 지속됐다. 이 단계에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통화표시 자금조달이 곤란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이탈이 발생하면 외환에 대한 초과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심각한 외화부족에 직면한다.
그 후 주가와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경제주체들의 디레버리지(부채축소·저축제고), 통화가치 절하에 따른 대차대조표 효과 등을 통해 비교적 큰 폭의 실물경기 침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우 실물경제 침체가 또다른 외자이탈을 유발하는 나선환 악순환 위기에 빠지는 국가도 있다.
이런 과정을 최근 상황에 적용해 보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개별국가별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진전되는 베네주엘라,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은 실물경기 침체 직전단계인 외환보유고가 감소되고 있어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금융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한국, 중국 등은 같은 신흥국에 속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영향받는 심리적인 충격 이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이탈한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과정에서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은 이들 국가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론적으로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응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혹은 선제적 대응방안으로 외국자본 유입과 유출규제다. 또 다른 하나는 유입국의 내부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외환보유액을 대폭 확보하거나 운용수익 등 외환보유액 활용능력 제고, 외화건전성 규제 등이다.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응방안에 대해 실효성을 검토한 기존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신흥국들이 최우선 순위를 둬서 추진해 왔던 외국자본 유입규제는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외국자본 유출입 규제보다 훨씬 앞서가는 고도의 파생금융기법이 발달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때문에 ‘급격한 자금이탈`의 대응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은 1990년대 이후 중남미 외환위기,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신흥국들이 외부요인에 의한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안전장치로 가장 중시되고 있다. 연구자에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서 이들 국가들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자금이탈` 방지책으로 가장 효과가 큰 외환보유액을 얼마나 보유하는 것이 적정한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의 정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외환보유액은 교환성이 있고 시장성이 높은 자산으로서 국제수지 불균형의 보전목적으로 통화당국에 의해 즉시 사용가능하고 통제되는 대외자산’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갈수록 자본자유화 진전과 외환위기 등의 영향으로 외환위기 방지 또는 해외자본의 갑작스런 유입감소나 유출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다. 신흥국들의 정책사례에서도 외환보유액 확충이 가장 효과가 크게 나타난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제금융기구와 학계에서 적정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환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환보유액 보유동기에 따라 IMF방식과 그린스펀·기도티 규칙, 캡티윤 모형 등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적정외환보유액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나고 우리도 적정외환보유액 규모를 놓고 논란이 끝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위기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정책당국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을 상당부문 줄일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개인 입장에서도 재산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과거 위기발생국의 공통적인 경로를 토대로 볼 때 일단 CDS 금리 등 위기관련 지표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거짓신호’ 여부와 관계없이 ‘파란불(경고 Ⅰ)’를 켠다. 그 후 △CDS 금리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2배로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환율변동이 심하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꾼다(경고 Ⅱ).
상황이 더 악화돼 CDS 금리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4배 이상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 규모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2배 이상 감소하거나 곧바로 순유출세로 바뀌고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 ’노란불‘에서 ’주황불‘로 한 단계 격상(경고 Ⅲ)시킨다. 최종단계로 △통화 절하폭이 직전년도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확대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주황불’에서 ‘빨간불’로 전환(경고 Ⅳ)한다.
경험국 사례로 볼 때 ‘경고 Ⅲ’ 단계에 가면 그때서야 국민들이 ‘경제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늦어도 ‘경고 Ⅱ’ 단계에서 알아낼 수 있다면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얘기다.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돈을 많이 벌었던 조지 소로스가 ‘개별 조기경보체제(PEWS·Personal Early Warning System)’를 잘 구축해 ‘경고 Ⅱ’ 단계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은 국내 투자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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