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라이브 방송 중, 인터뷰어 PK헤만이 채비니에게 던진 멘트는 "너는, 너 걱정이나 하세요" 예상과는 다르지만, 뻔하지 않아 흥미로운 신인 가수 `채비니(본명, 임은빈)`의 이야기다.
지난 13일, 레이싱 모델로 활동하던 채비니가 신인가수로 데뷔했다. PK헤만이 작사·작곡을 맡았고, 제이 멜로우가 피처링에 참여한 싱글 앨범 `디어 대드(Dear Dad)`. 이 곡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채비니는 PK헤만과 고된 1년을 보냈다.
# 첫 만남, 당돌하고 독한 제안
베이글. 청순한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 외형적으로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신인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가수가 되기에는 특출난 노래 실력도, 랩 실력도 없었다. 채비니의 데모테이프를 처음 들었을 때 `국내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아이의 데뷔는 막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섹스 심볼의 이미지, 흔히 `군통령`이라 불리는 아이돌을 양성할 생각이 없던 내게 예쁜 목소리, 귀여운 외모, 신비스러운 척하는 채비니는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작년 이맘때 즈음, 투명한 피부에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짓는 채비니를 만났다. 삼성동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사실 확신이 없었다. "데뷔하면 반짝 떴다가, 댓글에 상처만 받고 그만둘 것 같아요.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선배 입에서 나온 묵직한 충고였다. 나의 팩트 공격에 충격받았을 거라고 예상했던 채비니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노래나 랩을 해본 적도 없어요. 한번 가르쳐보시고 아니다 싶으시면 깔끔하게 접으셔도 돼요. 어떠세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첫 대면에서 채비니는 그렇게 내게 당돌한 제안을 했다. 당시 채비니에 대한 나의 인상은 `강하다`는 의미로 `확실히 세다`였다.
첫 느낌이 맞았다. 채비니는 어쨌든 강하고 독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올해 9월. 우여곡절 끝에 채비니의 앨범이 나왔으니 말이다.
# 가식 없어 미안한 - 솔직 대담 토크
연습 시 집중력이 강하고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던 채비니. 소속 가수를 오랫동안 봐온 담당 프로듀서로서 이번 인터뷰에도 채비니가 잘 적응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가수로 데뷔하고 달라진 점이 있나요?" 나의 질문에 채비니는 단답했다. "뭐, 똑같아요" 난감했던 나는 부드럽게 다음 질문을 이어간다. "스트레스받을 때 푸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역시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자요"
순간, 타 매체 인터뷰가 끝난 후, 한 기자가 나한테 남긴 한마디가 맴돌았다. "비니는 인터뷰 연습 좀 더 해야겠어요" 이 아이와의 계약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찢어버려야 하나.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말을 좀 길게 하자는 농담으로 우리는 가볍게 입을 풀고 다시 인터뷰에 임했다. "레이싱 모델로 활동할 당시 제법 유명했잖아요. 당시 활동은 어땠어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채비니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레이싱 모델은 행사의 얼굴이에요. 나름대로 자부심으로 숨은 노력을 많이 해요. 불편한 옷을 입고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성적 비하나 욕설을 듣는 날이나, 몰래카메라로 특정 부위를 촬영하시는 분들이 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죠."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자신의 애인 혹은 가족이 누군가에게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된다고 상상해본다면, 이는 분명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많은 인파가 몰리는 대기업 차량의 공식 홍보자리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확실히 개선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다. 평소에는 나조차 몰랐던, 채비니의 모델 활동 당시의 고됨이 느껴졌다.
자주 가는 맛집을 묻자 채비니는 눈을 반짝였다.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함지 곱창`을 추천해요. 저는 일주일에 네 번도 간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거든요." 곱창 마니아로서 이 대답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채비니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있다. "아시아 격투기의 전설 임치빈 선수에게 복싱을 배운 적이 있어요. 반년 정도 배웠는데 지금은 집에서 혼자서 연습하곤 해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이젠 정말 즐기게 된 거죠" 평소 그의 성격처럼 음식, 취미 취향 한번 털털하다.
# 친애하는 아버지에게
점차 인터뷰에 익숙해져 말문이 트인 채비니에게 데뷔곡 `디어 대드(Dear Dad)`에 관해서 물었다. 채비니가 자세를 고쳐앉았고 스튜디오 현장은 숙연해졌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응급조치가 필요해 대학 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의료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죠. 아버지가 의사셨기에 더욱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 옷에서 USB 하나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그동안 제 모델 활동 시 사진, 영상, 인터뷰 등 소소한 기록이 전부 저장되어 있었죠. 평소 연예 활동을 많이 반대하셨던 터라, 기분이 이상했어요. `유명해지자. 가수가 돼서 아버지에게 꼭 노래를 선물하자`라고 생각하게 된 시점이었죠" 말을 잊지 못하는 채비니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과거 타 매체 인터뷰 도중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필자는 당황했지만, 제작진은 아버지에게 영상편지를 보내자는 제안으로 센스를 발휘했다. 아직은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젊은 시절. 그에게는 지난 1년이 분명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늘 보여주던 밝은 모습 뒤에 혼자 견딘 아픔의 시절을 생각하니 내심 대견해졌다.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모델일, 음악일 어떤 일이든 정말 즐겁게 하고 싶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 아가, 잘 하고 있구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소중하게 사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 인터뷰를 마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며 필자가 가장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그 안에는 꿈, 신의, 이해타산, 가능성, 희망 고문 등 가장 우아하고도 천박한 사람들의 각종 욕망이 담겨 있었다. 돈과 사람을 이용해 서로를 속이고 밟고 올라서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그 끝에서 결국 살아남아서 즐겁게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아마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 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꿈을 저당 잡아 `대표` 소리를 듣고 악질 행위를 하는 이들, 명품 혹은 차라도 한 대 뽑아주면 영혼까지 팔아버리는 아이돌 지망생들.
이 칼럼을 빌려 이야기하건대 채비니, 체리킴, 윤자, 김태은 등 필자는 정말 음악을 사랑해서 생활고를 견디며 꾸준히 작업에 몰두하는 친구들과 작업 중이다. 계약서 한 장 안 쓰고,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아티스트에게 일차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채비니 역시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채비니의 데뷔 앨범은 국내 음원 발매 및 유통 후, 일본 내 대형 음반유통사인 에이벡스와 발매 계약을 완료했다. 미국 애플사의 아이튠스와도 발매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뿐 아니다. 현재 채비니는 국내 최초 격투기 만화작가 노가드가 연재한 웹툰 <옥타군>의 주인공으로 캐릭터 초상권 전속계약을 했으며, 의류 브랜드 `테일업`, 아이웨어 브랜드 `시나앤소모` 등의 현역 모델로 활동 중이다. 대형 소속사의 도움 없이 우리는 앞으로 가고 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은 있을 수 있으나, 꾸밈없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리스너들을 만나고 싶다. 적어도 필자의 싸이월드 노래 하나를 소장하고 있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하고 진실한 음악만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진행 PK헤만(가수&래퍼) | 기획· 편집 권영림
※ 티비텐플러스 <PK헤만의 라이브칼럼 A3 : All About Artist >에서는 매주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여기서 아티스트란, 창작 또는 표현 활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넓은 의미의 종합예술가를 칭함)`를 라이브 생방송에 초대합니다. <PK헤만의 라이브칼럼 A3 : All About Artist > 라이브 방송과 VOD 콘텐츠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티비텐플러스(TV10plus)` 앱을 다운로드해 시청할 수 있습니다. (사진= RapHop recordz)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