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중독' 알고도 60대 노동자를 다시 주물공장에 배치

입력 2017-12-27 23:41  

주물공장에서 40여년간 일한 60대 노동자가 심각한 납중독에 걸린 것을 회사가 알고도 `주물 전문가`란 이유로 다시 주물공장에 배치한 것으로 드러나 시민단체가 진상조사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 `녹산노동자 희망찾기`와 부산·울산·경남권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는 27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녹산·밀양공단 주물 작업 노동자의 납중독 발병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나서 조사와 대책 마련을 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2002년 4월에 입사해 현재까지 16년간 경남 밀양의 A 금속에서 일한 정모(61)씨가 납중독으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부산 녹산공단에 있다가 올해 5월 밀양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정 씨는 이 회사에서 납, 니켈, 주석, 아연, 동 등을 1천350도로 녹여 합금한 후 자동차,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정 씨는 이 회사에서 근무하기 전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 40여 년간 중금속을 만졌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손톱에 피가 나고 발톱에 진물이 나면서 통증이 왔다고 정 씨는 말했다. 무좀, 내성 발톱 등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수면장애, 관절통, 어지러움 등까지 겹치며 최근엔 기억력 감퇴 등으로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는 작업 중 쓰러지기도 했으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출근 때 입었던 흰옷이 퇴근 무렵 시커멓게 변했다고 설명했다.
정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한 2015년 11월 대한산업보건협회에서 받은 특수건강검진표에 따르면 그의 혈중 납 농도는 61.1㎍/㎗였다.
대한산업보건협회는 혈중 납 농도가 29.9㎍/㎗ 이하가 정상 수치라고 설명했다. 정상과 경계 수치를 배 이상 넘긴 것이다.
중금속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매년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정 씨는 2015년에 처음 이 검진을 받았다.
회사 측은 2015년 처음으로 납중독 검사를 받으라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따르면 직업병에는 정상(A), 요관찰자(C), 유소견자(D)로 나뉘는데 정 씨는 유소견자 직업병 확진을 받은 상태다.
정 씨의 아내 김모(59) 씨는 "회사에서 남편이 혈중 납중독 수치가 높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서 확인했다"며 "회사는 노동자의 건강을 무시한 채 은폐했다"고 비난했다.
김 씨는 "남편이 몸이 계속 아프다고 해 지난해 5월 병원에 갔다가 그때 남편의 혈중 납 농도를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회사 측은 "2016년 2월 노동부에서 전달받은 정 씨의 건강상태를 정 씨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회사가 알려줬다면 기억을 못 할 이유가 없다"며 "회사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회사는 정 씨가 납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다시 주물공정에 복귀시켰다.
정 씨는 주물공정 복귀에 앞서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밀양 공장 신축작업장에 청소 등을 했다.
그 기간 엉덩이뼈를 다쳐 3월부터 6월까지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A 금속 관계자는 "납중독에 걸린 것은 안타깝지만(정 씨가) 주물 전문가라 부득이하게 주물공정에 복귀시켰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을 한다"며 "현재 도움을 줄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지난달 녹산상담소를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신청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정 씨와 같이 작업했던 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6년간 일하다 비슷한 증상을 보여 본국으로 갔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납중독은 A 금속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정 씨와 함께 일했던 노동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주물 사업장 전반에 대해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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