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메이커스] 공유농장 첫 배당 하는 날

이성경 부장 (부국장)

입력 2018-03-13 14:46  

    박아론·전태병 만나CEA 대표

    공유농장 '팜잇(FARM IT)의 주주들은 지난해 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을 듣는다. 농장을 만들어 첫 수확한지 1년도 안 됐는데 배당을 받게 된 것. 700여명의 주주들은 이달말 열리는 주주총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 농부가 된 카이스트 공돌이

    2008년 카이스트에 입학한 박아론·전태병 씨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다. 두 청년은 각각 산업디자인과 기계공학이라는 자신들의 전공과 딱 맞게 자동차에 빠져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술의 집합체 라는 자동차 보다 기술진보가 더 빠른 분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농업 이다.

    "올해의 신차가 2~3년 전의 자동차와 정말 크게 다를까요? 생각 보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요. 그런데 농업은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달라요. 농업이 더 유망하겠다 싶어 기술개발에 들어갔어요." (박아론 공동대표)

    카이스트 공돌이들은 생명공학과 ICT(정보통신기술)를 결합한 미래형 농업을 꿈 꾸며 대학 3학년 때인 2013년 만나CEA 라는 교내 벤처를 설립했다. 청년 CEO들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 올린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는 물고기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를 결합한 것으로, 물고기 배설물로 액상비료를 만들어 식물을 키우고, 그 식물이 정화한 물에서 물고기가 살아가는 순환농법이다. 흙과 농약 없는 친환경 이면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첨단 농법이 개발된 것이다.

    이제 농사 짓는 일만 남았다.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충북 진천에 자리를 잡았다. 청년들은 물과 물고기가 가득한 이상야릇한 설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역 농민들의 눈에 농활 체험 하는 '낭만청춘' 정도였던 젊은이들은 농장에 눌러앉아 농사를 지었고 곧이어 농작물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 신선식품 배송 작전 '만나박스'

    초보 농민 CEO들은 농작물 판매 방식도 완전히 바꿨다.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에 들어가는 대신 온라인 유통시장을 개척하기로 하고, 신선식품 정기배송 온라인 플랫폼 '만나박스(MANNA BOX)'를 2016년초 오픈 했다.

    고객들이 자주 사용하는 야채들을 등록해 놓으면 매주, 격주, 월 단위로 정기배송 하는 서비스 이다. 당시에는 채소나 고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배송 받는다는 개념 조차 없었다. 더욱이 정기배송 서비스라니. 하지만 저장이 어려운 농업에서는 주문량과 품목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했다.

    또한 고객들이 쌈채소와 함께 먹는 삼겹살을 찾기 시작했다. 진천 주변을 수소문해 질 좋은 삼겹살을 조달했다.

    "만나박스가 배송될 때 채소 외 다른 것도 같이 받고 싶다는 고객들이 많았어요. 삼겹살 부터 시작해 과일, 산나물, 생선 등 품목이 점점 늘어나 지금은 신선식품 전체를 취급하게 됐어요. 조달 지역도 주변 농가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됐어요." (전태병 공동대표)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 속에 시작된 만나박스는 집밥 열풍 등으로 식료품 배송시장이 급성장 하면서 오픈 2년 만에 누적 고객 2만명을 확보했다.

    ◇ '공유농장 팜잇(FARM IT)'…귀농인의 꿈

    독보적인 첨단 농법으로 최고 품질의 농작물을 독점 생산하는 것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꿈 꿔 왔던 것은 농민과 귀농인들을 돕는 농업기술을 연구하고 장비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발한 설비가 농업 생산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그 설비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유통시키는 것이죠." (전태병 공동대표)

    좋은 농작물을 저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업기술을 농민과 예비 농업인에게 보급하는 것이 그들이 갈 길이다. 두 청년 CEO는 아쿠아포닉스 농법이 안정 되자마자 예비 농민들이 주주가 되는 공유농장 '팜잇(FARM IT)'을 설립하고 2016년 크라우드펀딩에 들어갔다. 와디즈에서 한 달 간격으로 모집한 팜잇 1호와 2호는 각각 법정 한도액 7억원을 모두 채웠다.

    700여명의 예비 귀농인들이 모아준 자금으로 각각 700평 규모의 농장 2개를 새로 만들었다. 지난해 4월부터 순차적으로 출하가 시작돼 약 8~9개월간 팜잇 1호는 1억5천만원, 팜잇 2호는 1억2천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팜잇에서 나온 이익은 전액 배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200만원을 투자한 주주 1명 당 10~13만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주주들은 머지않아 귀농해 팜잇 농장을 운영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농작물이 출하 된지 1년도 안됐는데 생각지도 않은 배당을 받게 돼 기쁘다고들 하세요. 하지만 저희들은 확신이 있었고 오히려 배당 금액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아쉬워요. 내년에는 더 많이 배당 할 겁니다" (박아론 공동대표)

    ◇ 대한민국 스마트팜 첫 수출

    충북 진천 1만9,800㎡ (약 6,000평)의 농장에서 나온 농산물이 만나박스에 담겨 전국으로 배송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익숙한 농장 풍경은 이 독특한 농업벤처의 절반의 모습일 뿐이다. 현재 매출의 60% 이상이 농업플랜트 판매에서 나온다. 농업 회사 이면서 기술 벤처 인 것이다.

    실제 회사 직원 100명 가운데 50명 이상이 농업 시스템을 연구하는 기술 인력과 설비시공 전문가들이고, 이외 30여명이 만나박스 등 이커머스를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 20여명이 농장 운영을 맡고 있는데 모두 진천 지역의 베테랑 농민들이다.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 두 친구는 그들이 꿈 꾸고 달려왔던 또 하나의 목표에 한발 다가서고 있다. 그들이 만든 농업설비를 수출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흙에서 농작물을 생산할 수 없는 사막 국가들과 수출 계약을 앞두고 있다. 수주가 성사되면 회사 매출은 지난해 80억원에서 올해 2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기술을 원하는 곳이 있다니 마음이 설렙니다. 농업에 IT를 접목하면 우리나라 농업도 경쟁력이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산업을 결합해 다양한 사업화 모델을 만들어 수출하면 한국 농업의 장기적인 먹거리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박아론 공동대표)

    "창업 한 뒤 2년 동안 부모님께 숨기다가 겨우 말씀 드렸어요. 그 당시에는 농업이나 창업이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10년 뒤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그 때는 농업이 가장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산업이 될 테니까요."(전태병 공동대표)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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