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SKT,'전자투표제 실험'...주주총회의 의미는 '소통'

신인규 기자

입력 2018-03-22 07:58  



번듯한 기업의 대회의실에서 주주총회가 열리면 아래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직원주주` 자격으로 자리를 메운다. 로마의 방패병처럼 한데 모인 이들의 임무는 주주총회의 원활한 진행이다. 의장이 총회 의안을 읽어내려가면 직원주주 가운데 누군가가 홀연히 "의장!"을 외치고, 안건이 통과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짐짓 강조하고, 다른 주주들의 박수를 이끌어내 제청을 받고, 안건을 순식간에 통과시킨다.

기업들이 저마다 직원주주를 주주총회에 배치시키는 또다른 이유는 `주총꾼 막기`다. 주총꾼은 악의적인 목적으로 주주총회 진행을 방해하고, 방해하지 않는 대가로 기업에 금품을 요구하거나, 때로 회사 측에 서서 특정 안건의 통과를 주도하는 이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주총꾼이 총회를 지연시키면 직원주주는 분연히 일어나 주총꾼을 비난하고, 이에 자극받아 다른 주주들이 주총꾼을 야유한다. 그러다 결국 대부분의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되고 주총은 끝이 난다. 틀에 박히고도 지루하며 남는 것 없는 주총의 광경은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주주총회가 이런 모습인데, SK텔레콤의 제34기 정기주주총회는 이 기업과 경영진이 주주친화 경영에 대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실소로 시작해 미소로 마무리된 SK텔레콤의 주주총회 풍경을 기록해둔다.

▲전자투표제 첫 도입...SKT 주총, 시작은 `삐걱`
21일 SK텔레콤은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주주가 총회 전 안건을 전달받고, 동의 여부를 온라인 투표에 부치는 제도다. 주주들이 총회장에 오지 않고도 편리하게 의결권 행사를 할수 있도록 하는 주주 친화 경영의 일환이라는 것이 SK텔레콤의 설명이다. 전체 주주의 84.3%가 전자투표에 참여하거나 의결권을 위임한 상황에서 총회는 개최됐다.

문제는 전자투표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번 총회의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데서부터 시작됐다. 주총 현장에 뒤늦게 참석한 주주들로 인원 확인에 시간이 걸렸고, 결국 주주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개회 예정 시간으로부터 7분이 지나자 의장을 맡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단상에서 "주주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터져나온 불만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의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잘못했다는 기류가 형성됐고, 주총꾼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연신 발언권을 얻고 총회의 절차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1주 1의결권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전자투표와 참석자 현황을 구분하기를 요청하고, 급기야 주총 단상의 태극기 위치까지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집행부 오른쪽에 놓여야 할 태극기가 왜 왼쪽에 놓였으며, 이렇게 해서 총회 식순인 국민의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높은 목소리가 자못 진지하게 터져나왔다. 직원주주들로 보이는 이들이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총회는 점점 늘어졌다. 박정호 사장이 SK C&C의 대표로 있던 시절 (주)SK와의 합병이라는 거대한 안건이 있었을 때도 총회는 10여분 만에 끝났었다. 실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진행을 담당한 사회자만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SK텔레콤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것이 혹시 주총꾼 없는 매끄러운 총회를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는 대목이었다.

▲주주 목소리 끝까지 경청한 박정호 사장
주목할만한 것은 박 사장이 비판적인 주주들의 행동을 조율하되 발언권을 막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위임받은 주식을 통해 94.2%의 주주가 이미 찬성한 재무제표 승인 건 등을 주총장에서 다시 표결에 붙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경청했고, 수익 계산을 잘못한 채 이뤄진 비판은 답변을 통해 바로잡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총꾼으로 매우 의심되는 이들의 절차적 문제제기였다.

주총을 관전하는 입장에서 의미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느 주주가 발언권을 얻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재투자를 했을 때 주주에게 과실이 돌아온다는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계열사인 하이닉스의 배당 문제 등 경영 정책이 중요한데, 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 시간 가깝게 늘어진 총회에서 거의 처음으로 나온 소모적이지 않은 질의였다. 직원주주도 주총꾼도 아닌 이 주주의 질의는 그래서 박수를 받았다. 박 사장의 답변에서도 진심이 읽혔다. 주총꾼들로 총회가 파행할 때 직원주주의 공세로 이를 덮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들어낸 박정호 사장이 이끌어낸 작은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의응답을 기점으로 총회는 시작과 달리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일사천리` 주총도 `주총꾼 훼방` 관행도 개선되어야...선진 문화 자리잡을까
주주총회는 기업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이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경영문제에 대해 최고경영진에게 직접 질의를 할 수도, 경영 방침을 나의 투표로 결정할 수도 있다. 주주총회를 두고 주주자본주의의 꽃이라 일컫는, 우리나라의 관행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비유법은 그래서 생겨났다.

기업이 당당하고 원칙을 지켜나가면 소위 `주총꾼`들의 협잡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기업이 불편한 질의를 받는 대신 금품으로 무마하는 관행이 주총꾼을 만들었고, 직원주주를 동원해 총회를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려는 편의주의가 주주를 외면해왔다.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굵직한 기업들의 주주총회 일시가 한 날로 모인 `슈퍼 주총데이`가 생겨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모두 개선되어야 할 관행이다.

SK텔레콤은 슈퍼 주총데이에 숨어 감시의 눈을 피하는 대신 정공법을 택했고, 전자투표제 도입도 비록 시작에 잡음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의미있는 모습으로 주총을 마무리했다. 이 기업의 주주총회는 주주의 뜻이 바르게 반영되기 위해 기업과 경영자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예시로 남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보다 주주 친화적이면서도 또 올바른 주총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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