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십자가의 길` 의식에서 "젊은 세대에 분열과 전쟁으로 부서진 세계를 물려주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절을 이틀 앞둔 `성(聖)금요일`인 30일 밤(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열린 `십자가의 길` 행사 말미에 "젊은이, 병자, 노인들을 소외시키는 이기주의가 이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이 같이 개탄했다.
교황은 "기독교인들은 야망과 자만심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존엄성과 (예수에 대한)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 성직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며 "젊은 세대에게 분열과 전쟁으로 부서진 세계를 남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황은 한편으로는 "많은 선교사들이 빈자와 약자, 난민, 학대받은 사람, 배고픈 사람, 옥살이 하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여전히 오늘도 자신의 목숨을 걸며 무감각해진 인간의 양심에 도전하고 있다"며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선이 악을 이기고, 용서로 분노를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던 고난을 상징하는 의식인 이날 행사에는 약 2만 명의 순례자가 촛불을 들고 참여했으며, 시리아에서 온 난민 가족, 이라크 수녀, 이탈리아 고교생 등이 돌아가며 검정색 대형 십자가를 들어 눈길을 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를 청년들에게 희망과 관심을 전하는 해로 삼은 만큼, 특별히 학생들과 청년들이 쓴 기도문과 명상 구절이 행사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공영방송 `RAI 1`을 통해 생중계된 교황의 이날 `십자가의 길` 의식은 약 450만 명이 시청, 점유율 19.1%를 기록해 이탈리아인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한편, 부활절을 앞두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를 노리고 있다는 위협이 제기됨에 따라 이탈리아 당국이 경계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날 행사 주변에는 이탈리아 군경 1만명이 배치돼 삼엄한 단속을 펼쳤다.
최근 대대적인 대테러 작전을 펼치고 있는 이탈리아 당국은 이날도 북부 피에몬테 주에서 19세의 모로코 출신 잠재적 테러 용의자를 체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에 연루된 용의자 5명이 붙잡히는 등 최근 나흘 연속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 세력들이 당국에 적발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0일 교황이 부활절을 앞두고 집전한 `십자가의 길` 의식을 앞두고 경찰이 로마 콜로세움 주변을 탐지견을 동원해 살피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31일 밤에는 부활절 전야 미사, 1일에는 부활절 미사를 각각 집전한다. 부활절 미사 뒤에는 부활 메시지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를 향해)도 발표한다.
교황은 앞서 지난 29일 성목요일에는 로마 시내의 교도소를 방문, 이슬람 신자, 불교 신자,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포함된 재소자 12명의 발을 씻겨주고 입을 맞췄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제자들과 한 `최후의 만찬`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나도 당신들처럼 죄인이지만, 예수를 대신하겠다"며 "지도자들은 그가 어디 있던 아랫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재소자들에게 "시선을 새롭게 하라. 그게 당신들에게 좋다"며 "내 나이가 되면 백내장이 와서 잘 볼 수 없다. 내년에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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