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메이커스] "미래는 내가 만들어"...3D프린터 깎는 남자 - 이동엽 메이커

유오성 기자

입력 2018-04-17 10:40   수정 2018-04-17 10:30

    공장도 생산설비도 없는 세운상가 한 구석에서 3D 프린터를 만드는 한 남자. 만드는 게 아니라 '깎는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공을 들여 기술을 키우고 있다. 경쟁업체가 하나 둘 떠나가던 3D프린터 시장에서 이동엽 대표(45)가 빛을 발하는 이유를 알아봤다

    ▲ 3D프린터가 거품? 진검승부는 지금부터

    한 때 3D 프린터는 4차 산업혁명·미래 유망산업 등 같은 수식어로 포장된 소위 말하는 '뜨는 산업'이었다. 사람들은 원하는 모양대로 제품을 만들어 파는 1인 제조업의 시대가 눈앞이라고 생각했다.

    아나츠는 3D프린터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가득하던 2014년 설립된 3D프린터 제조 및 콘텐츠 생산 업체다. 3D프린터 열풍이 꺼지며 도산한 여느 업체들과 달리 아나츠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왔다. 창업 첫 해 2억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그 두 배로 성장했다. 심지어 일하겠다는 젊은 직원들까지 모여들었다. 3D프린터를 둘러싼 거품은 꺼졌지만 이 대표는 오히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3D프린터를 일반 프린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3D프린터는 공작기계나 생산설비로 접근해야 하고 외국에선 이러한 용도로 이미 생산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개인이 3D프린터를 사는 시장은 줄었지만 기업에선 다시 3D프린터의 가치를 알아보고 있는 셈이죠."

    이 대표가 주목하는 분야는 산업과 특수 분야에서 쓰이는 3D프린터다. 대형 사이즈 제품을 만드는 산업용 3D프린터 ‘제너레이터’와 바이오 제약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메딕’, 그리고 좁은 공간을 활용해 대량생산을 도와주는 ‘프린팅팜’이 대표적이다. 기술력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기업체와 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다른 3D프린터 기업과 다른 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 지원금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에 대한 믿음과 제조업의 본질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저희 회사의 본질은 제조업이에요. 물건을 판 돈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합니다.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제품을 많이 팔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 'CEO' 호칭이 낯선 20년차 IT전문가

    이 대표는 사업가라기 보단 만들기를 좋아하는 메이커에 가깝다. 스스로도 디자이너 출신의 코딩하는 엔지니어로 소개한다.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도 그의 경력을 쫓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2014년 아나츠를 설립하기 전까지 그는 편집디자이너와 방송국PD, 영화 특수효과 제작, 게임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해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는 업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온 흔적이라고 말한다.

    "저는 캐나다에서 3D 그래픽을 전공했어요. 이 학문은 개발도 배우고 디자인도 배워요. 20대에는 영상이나 디자인을 다뤘어요. 그러다 30대에는 IT쪽으로 넘어갔고요. 컴퓨터그래픽의 발전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이 대표가 아나츠를 설립한 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나름 잘 나가던 IT개발사를 창업해 운영하던 그는 IT개발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것을 봤다. 더 이상 안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연 사업에서 손을 떼고 1인 연구소를 세웠다. 직접 디자인하고 출력해 만든 부품으로 피규어나 각종 전자기기들을 만들던 곳이다. 손재주가 좋은 그를 본 한 지인이 "3D프린터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당시는 3D프린터 특허가 풀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업체를 제외하곤 기술력이 떨어지던 시기다.

    "3D프린터는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걸 운영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만들 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걸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능력도 있어야 하죠. 그런데 저는 2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걸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 온 거잖아요. 거기다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창업을 다시 결심하게 된 거죠."

    ▲ 워라밸보다 행복한 '덕업일치'

    올해로 4년차를 맞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까지 사무실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더 좋은 성능의 3D프린터를 만들기 위해 설계와 개발, 기계를 조립하는 일들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힘들 법도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입가에 띈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저는 사실 지금 너무 재밌어요. 상상하는 모든 걸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잖아요. 소비자를 관찰하고 업계를 관찰해서 어떻게 하면 제가 만들 물건을 개선하고 더 잘 만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하는 게 저한텐 하나의 놀이예요. 힘든 건 맞지만 그걸 이겨낼 정도로 이 일이 재밌습니다."

    스스로 메이킹을 즐기다 보니 메이커 문화에도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메이킹을 취미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직업으로 삼게 되면 일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본인의 경험에서다. 일을 즐겁게 즐기는 와중에 성공한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메이커 문화의 활성화가 이뤄질 거라고 믿는다.

    "저한테 수업을 들으러 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항상 그런 말을 해줍니다.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요. 회사를 돈 만 버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메이커는 자신의 취미가 직업으로 연결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 친구들한테 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고 싶어요."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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