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문화재 관람료를 사찰 입구에서 받게 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3월 이후에만 15건이 올라왔다.
이 중에는 등산로를 막고 통행세를 거두는 행위를 산적에 비유한 청원도 있다. 과거 산적질 행태와 다를 게 없다는 비아냥이다.
국립공원 문화재 관람료 논쟁은 2007년 공원 입장료가 폐지될 때부터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등산객들은 `국립공원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반면, 사찰 측은 문화재 유지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재원이라고 맞선다.
현행 문화재 보호법 49조는 문화재 소유자가 시설을 공개할 경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놨다. 이를 근거로 국립공원 내 사찰 25곳을 포함해 전국 사찰 64곳에서 1인당 1천∼5천원의 관람료를 징수한다.
문제는 이들이 사찰 방문객뿐 아니라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에게도 예외없이 관람료를 받는 데 있다. 산적질에 비유될 정도로 국민적 비난이 거센 이유다.
국민청원을 추진하는 김집중 종교투명성센터 사무총장은 "모든 국민은 세금으로 관리되는 국립공원을 자유롭게 통행할 권리가 있는데, 등산객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강요하는 지금의 방식은 크게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해 얼마나 되는 관람료가 걷히고,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불투명하다"며 "징수 목적과 방식, 용도 등을 법제화하는 게 시급하고, 거둬들인 돈의 쓰임새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계는 관람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문화재 유지 관리 방안부터 먼저 논의하라는 입장이다.
사찰에서 징수한 문화재 관람료의 절반은 종단으로 보내져 예치된다. 관람료 수입의 절반은 평소 문화재를 유지·보수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는 큰돈이 들어갈 일에 대비해 종단에서 따로 보관한다는 얘기다.
조계종 관계자는 "문화재를 보수하려면 사찰도 20% 안팎의 자기부담금을 낸다"며 "1천700년간 문화유산을 지켜왔고, 지금도 유지관리를 위해 애쓰는 불교계의 노력을 외면한 채 관람료의 정당성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불교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보존 대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불교계 역시 10년 넘게 되풀이되는 논쟁을 매듭지어야 할 때가 됐다는 데는 동의한다.
이 관계자는 "새 총무원장 취임 후 문화재 관람료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내부 논의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라며 "실무팀이 구성돼 회의가 열리고 있으며, 외국 사례도 분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사찰과 지방자치단체가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 문화재 관람료 빗장을 푸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는 올해부터 보은군민에게 관람료(4천원)를 면제해 주고 있다. 상생협약이 있고 나서 주민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신분증만 제시하고 자유롭게 사찰과 속리산 국립공원을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법주사 관계자는 "종전 사찰 주변 주민에게 적용하던 혜택을 군민 전체로 확대한 것"이라며 "보은군에서는 전통문화 발굴과 속리산 관광 활성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범어사도 2008년 1천원이던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 대신 부산시로부터 한해 3억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부산시 관계자는 "관람료가 없어지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사라졌고, 사찰 방문객도 부쩍 늘었다"며 "사찰과 시민이 모두 만족하는 상생모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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