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저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연기적으로 깰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많이 유연해졌죠. 그리고 역할로 봤을 때 제 첫 인상과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어요. 하지만 저를 보신 분들은 저와 반대가 되는 성격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이걸 무사히 맞췄다는 점.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캐릭터 접근 방식이 바뀔 것 같아요.”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외모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정인선. 정인선은 약 2개월여 동안 싱글맘 윤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4월 17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에서 귀여운 허당 모습으로 극의 재미를 배가 시켰을 뿐 아니라 “딱! 윤아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캐릭터 소화를 잘해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연기내공을 한껏 꽃피우며 시청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정인선을 만나 촬영 뒷얘기를 들어 보았다.
“만족도는 100% 이상이에요. 너무 많은 분들이 어떻게 노력을 해서 어떻게 만들어 진지를 알고 있고, 그걸 또 이렇게 하나로 완벽하게 만들어 주신 감독님에 대한 찬사, 많이 사랑을 해주신 것도 있어요. 윤아로서의 제 모습은 80% 정도. 시작할 때부터 어렵게 생각했던 캐릭터인데, 제가 보기에 모자란 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아쉽기도 하고, 하지만 70%라고 말하지 하지 않는 것은 마음고생도 했고, 깨우친 것과 배운 것이 많아서예요. 정인선과 윤아의 거리감이 20% 정도 있을 수 있는 거고, 애매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서 그 애매한 표현 속에서 괜찮은 행동과 표정과 말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죠.”
‘와이키키’는 망할 위기에 처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에 모여 살게 된 다양한 청춘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정인선 외에 김정현(강동구), 이이경(이준기), 손승원(봉두식), 고원희(강서진), 이주우(민수아) 등 여섯 배우들이 저마다 그려내는 웃픈 이야기가 특징이었다. 정통 드라마라기에는 시트콤적 요소가 많았다.
“시트콤이라는 장르 자체가 리듬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거기에 큰 틀로 가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 마다 새로 가니까 저희도 힘들었지만 보시는 분들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서서히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맥주 한 잔 하면서 편안하게 보셨다고 말을 해주셔서 그것이 힘이 됐어요.”
극중 정인선은 생후 3개월 된 딸과 엉겁결에 와이키키에 눌러 살게 된 싱글맘 윤아 역을 맡아, 생활고에도 무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는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그려냈다.
“윤아 캐릭터는 두 가지를 대비시키면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는 나머지 멤버들은 이제 시작하는 청춘이라면 윤아는 다시 일어나려는 청춘이잖아요. 한 번 부딪혀 봤고, 한 번 꺾여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빨리 철들어 버린 청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구에게 조언을 잘해주고, 포근하게 해주는 철이 드는 모습과 어떨 때는 눈치 없고, 맑고, 순순해요. 꿈을 대하는 태도는 설레 하고 열정적이죠. 그 나이 또래의 원래 윤아의 모습을 같이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연결이 안 돼 보일수도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정도로 경험을 했는데, 철이 안 들어 보여도 되나 고민을 했죠. 간극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어요. 어느 정도는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윤아를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윤아는 6명 중 가장 서사도 흐르지 않으면서, 감정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행동도 과해도 안 되고, 덜 해도 안 되는 인물이라 농도 조절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너무 정극처럼 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시트콤처럼 윤아를 표현하면 안 되고. 처음에는 감독님께 혼도 많이 났어요. 그래서 윤아의 모습이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나중에는 ‘감독님과 저는 애증의 관계’라고 하면서 장난도 쳤어요.”
정인선이 이창민 PD를 만난 건 큰 행운. 이창민 PD는 정인선에게 특별한 것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저를 처음 뽑으실 때 ‘저랑 윤아랑 잘 어울린다’고 해주셨어요. 작은 체구도 있지만, 제 처진 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의상은 파스텔 톤, 미색. 어떻게 보면 ‘와이키키’와 동 떨어진 색감, 의상이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욕심을 버린 것이 좋았어요. 치마 2-3개, 상의도 5개도 안 됐어요. 감독님이 이제 갈아 입어라라고 하실 때까지 버텨봤죠. 그런데 감독님이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씩 추가를 했어요. 그럼에도 파스텔 톤은 지키기로 했어요.”
윤아는 와이키키에서 지내기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파티쉐의 꿈을 키워가는 열혈 청춘 싱글맘. 실수 연발로 때론 분노를 유발하지만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드러냈다. 특히 해맑은 모습 뒤 숨겨진 고달픈 인생사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가 하면, 김정현과 아웅다웅하면서 애틋한 눈빛을 나누는 모습으로 핑크빛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솔이의 이름을 딴 머핀 레시피 개발에 성공하며 자신의 꿈에 한 발 다가간 모습으로 뭉클한 감동까지 더했다. 이처럼 정인선은 캐릭터와 한 몸이 된 듯 로맨스와 코미디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열연과 다채로운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윤아를 연기하는 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경험을 중요시해요. 캐릭터와 저 사이에서 교집합을 만들려고 하죠. 엄마라는 제가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초반에는 저와 반대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저랑 닿아 있는 부분이 많이 있더라고요.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정인선과 윤아가 만나더라고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진솔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정인선은 현실감 넘치는 능청 연기로 예측불가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허당 래퍼로 완벽 빙의해 감출 수 없는 코믹 본능을 터트렸다. 청순한 외모에 반해 진지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엉터리 랩을 구사하는 모습으로 폭풍 웃음을 선사한 것. 또한 김정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슈렉 고양이 눈빛과 더빙 영상으로 치명적인 애교를 선보이며 안방극장을 들썩이게 만들었으며, 추격전을 능가하는 술버릇 연기로 귀여운 면모를 드러내며 흑역사마저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김정현에게 용기를 내어 사랑 고백을 하는 모습으로 안방극장에 설렘 주의보를 내렸다. 이렇듯 정인선은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담은 명장면을 통해 잠시나마 팍팍한 현실을 잊고 웃을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을 선물했다.
“랩을 하는 장면은 진지한 것에 포커스를 뒀어요. 라임을 콕 집었죠. 감독님과 작가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웃기려고 하지 말고, 진지하게, 잘 한다고 생각하면서 몰입만 해줘라’라고 요청하셨어요. 저는 웃기려고만 했어요. 제 랩 실력이 별로였는지 피처링 제의가 1도 없더라고요. 노래 잘 할 수 있는데, 안 들어오더라고요. 저 나름 노래 잘 해요. ‘복면가왕’은 떨려서 못 나갈 것 같아요. 제 목소리랑 저랑 매치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느낌일 거예요.”
정인선은 배우들과 찰떡 연기 호흡을 자랑하며 꿀케미를 형성했다. 촬영장 안팎에서 아기 솔이와 러블리한 케미를 발휘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극중 정인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딸 솔이의 버라이어티한 표정 변화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모은데 이어, 정인선이 개인 SNS를 통해 솔이를 향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는 등 딸 바보의 면모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또한 김정현과 설렘 가득한 로코케미로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한 연인의 모습으로 어설프지만 달달한 청춘 로코 연기의 진수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연애 세포를 자극했다.
“‘와이키키’의 최고의 수혜자는 솔이 아닐까요.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솔이와 관련된 클립은 조회 수가 많았어요. 김정현, 이이경, 손승원, 고원희, 이주우는 각자의 장단점이 명확한 배우들이었어요. 장점으로 배운 게 많았어요. 애드리브 경쟁은 있었어요. 하지만 윤아는 애드리브가 허용이 안 되는 캐릭터예요. 서로 누가 웃기나 경쟁이었죠. 그래서 현장 분위기가 좋았고, 서로 시너지를 내는 경쟁이었어요. 현장에서 안 웃는데, 이번 현장은 웃느라 NG를 내서 혼났어요. 살 꼬집고 참느라 힘들었어요. 제가 ‘열정을 종합한 현장’이라고 했어요. 이런 현장은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랩 할 때는 애드리브가 있기는 했어요. 게스트 하우스 거실, 주방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애드리브가 하용 됐으나 윤아는 애드리브가 안 되는 인물이라 자제했어요.”
‘으라차차’는 화제성에 비해서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주 시청층이 TV를 본방사수하기 보다 다른 플랫폼을 이용해 시청하는 나이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터. 게다가 월요일, 화요일 밤 11시라는 방송 시간도 복병이었다.
“시작부터가 도전이었고, 모험이었어요. 월요일, 화요일 밤 11시 때, 거기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오랜 만이고, 젊은 6명의 합으로 끌고 가야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드라마였죠. 우리끼리의 파티가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어요, 기대감을 줄이면서 시작했어요. 숫자와 상관없이 큰 사랑을 받았죠. 시청률보다 화제성이 컸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사랑을 받은 것을 깨달았어요. 오히려 과분했죠.”
1996년 SBS 드라마 ‘당신’으로 데뷔해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정인선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다. SBS ‘순풍 산부인과’, SBS ‘카이스트’, KBS2 ‘꽃밭에서’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2002년 KBS2 ‘매직키드 마수리’, MBC ‘영웅시대’, EBS ‘네 손톱 끝에 빛이 남아 있어’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내공을 쌓다. 2013년 tvN ‘빠스켓 볼’로 성인연기자로서 안방극장 문을 두드려 ‘폭풍 성장의 좋은 예’라는 호평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KBS2 ‘드라마 스페셜 - 액자가 된 소녀’, 2016년 JTBC ‘마녀보감’, 이어 SBS ‘엽기적인 그녀’ 여주인공에 도전하는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18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TOP3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 KBS2 ‘드라마 스페셜 ? 맨몸의 소방관’,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 출연했다. 스크린에서도 입지를 단단히 다져왔다.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2010년 ‘카페 느와르’, 2014년 ‘한공주’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윤아를 연기하면서 젊은 시절을 추억하지는 않았지만 꺼내 온 것은 있어요. 저도 방송으로 볼 때 6명이 고군분투 하는 장면이 와 닿기는 했죠. 5-6학년 때 연기를 쉬려고 할 때 힘들었어요. 너무 공허 했어요. ‘아역’이라는 타이틀을 빼면 정인선이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를 깨달았죠. 그래서 연기를 계속하려면 사람 정인선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들이 겪는 시기에 연기를 쉬었어요. 중2부터 고2까지 제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지금의 제 자신을 잡아주는 중심을 그 때 만들었고,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 때했던 생각과 마음가짐이 연결된 게 많은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지만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관이 없었다는 거예요. 취미나 기호가 없다는 점이죠. 쉬면서 천천히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존감이 생겼어요. 내 것, 내 주관. 사진, 영화, 여행 등 그런 것들로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몇 년 주기로 조정을 하는 것은 생기는 것 같다.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정인선은 종영일인 지난 17일 ‘와이키키’에 함께 출연 중인 배우 이이경과의 열애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와이키키’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시기적으로 죄송스러웠어요. 생각보다 따듯하게 받아 주셨고, 좋은 결과로 만들려면 저희가 잘 해가면 되니까 마음이 편안해요.”
2개월여 동안 에너지를 쏟은 만큼 그녀는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못 다한 여행도 다녀오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이번 작품으로 배운 게 너무 많아요. 조용한 곳에 가서 생각 정리를 하고 제 것으로 체화를 시키고, 윤아를 보내려고 해요. 그리고 제 삶을 돌보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제 사람들 만나고, 제 여행 떠나고. 좋은 시간 가지려고 해요. 새로운 감정으로 너무 늦기 전에 다음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정인선은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힘들어도 재미있는 게 연기라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연기자로써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목표에요. 그래서 윤아라는 캐릭터를 어려워했고, 경계했던 것도 제 이미지의 한계를 저도 알고 있으니까, 제 이미지와 어울리는 캐릭터를 피해가고 싶었어요. 이걸 뛰어 넘고 뒤집는 것은 제 몫이죠. 저에게 파격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은 조금 악으로 가고 싶어요. 그러면 제 속이 시원할 것 같아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꾸준히 연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인선. 내공 깊은 연기력과 다채로운 매력으로 앞으로 그녀의 행보를 더욱 기대케 하고 있다.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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