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향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럭키금성그룹을 물려받아 LG로 이름을 바꾸고 `초우량 기업`을 만드는데 혼신을 다했던 경영자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김치형 기자입니다.
<기자>
<인터뷰>
故구본무 LG그룹 회장 (2014년 시무식)
"이 정도 만들면 팔리겠지라는 공급자 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고객의 감동을 줄 수 있도록... "
타계한 故 구본무 회장은 1945년 경남 진주에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학한 구 회장은 지난 1975년 LG화학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LG전자 국내외 사업부에서 실무를 익힌 뒤 1989년 LG그룹 부회장에 올랐고,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부회장도 역임했습니다.
1995년 아버지인 구 명예회장의 은퇴와 함께 그룹 회장에 올라 3세 경영을 본격화 했습니다.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를 선언했던 구 회장은 인터넷과 이동통신사업 지출은 물론 홈쇼핑 등으로 사업을 넓혔고 필립스와 손잡고 LCD 사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구 회장은 그룹명도 `럭키금성`에서 현재의 `LG`로 변경하며 글로벌 초우량 기업 `LG`라는 브랜드의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픔도 있었습니다.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반도체 사업이 통폐합 됐고, 2003년 터져나온 카드사태로 금융사업에서 손을 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 회장은 2003년 발빠르게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동시에 GS, LS그룹을 성공적으로 계열분리했습니다.
`정도경영`과 `고객가치경영`, `R&D경영`을 강조하며,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대 축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1947년 락희화학공업으로 시작했던 LG그룹을 창립 70년을 맞은 지난해에 매출 160조, 영업이익 10조원의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LG는 올해 들어서도 오스트리아 전장업체인 ZEW를 인수하고, 마곡 R&D센터의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
故구본무 LG그룹 회장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
"젋은 인재들이 언제든지 자기 생각을 펼치고 새로운 도전을 마음 껏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
그는 영면했지만 초우량을 향한 고인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한국경제TV 김치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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