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의 아이콘’ 손예진은 독보적인 여배우로 성장했다.
여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한정적인 요즘 원 톱 여주인공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는 손예진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코미디, 멜로, 액션, 스릴러까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만큼 그의 작품세계와 필모그래피 역시 흥미롭다.
다채로운 연기력과 시청률 파워까지 입증한 손예진이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연출 안판석, 이하 예쁜 누나)로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했다. 2013년 KBS2 드라마 ‘상어’ 이후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 한층 깊어진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손예진을 만났다
“드라마가 끝났다는 걸 못 느끼고 있어요. 보통 작품을 끝내고 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번엔 아니에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워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런 감정이 드나 싶었어요. 여운이 오래갈 것 같아요.”
오랜만의 드라마로 컴백한 손예진은 ‘예쁜 누나’를 통해 전국을 ‘예쁜 누나’ 신드롬으로 뜨겁게 달구며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에서도 방영 내내 1, 2위를 석권하며 ‘멜로 퀸’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드라마를 찍는 내내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눈, 배우로서의 자세까지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통해 나를 성장시키게 됐어요. 드라마를 사랑해주셨던 모든 시청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려요. 항상 좋은 연기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예쁜 누나’는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던 두 남녀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가 사랑에 빠지면서 만들어간 진짜 연애를 그려냈다.
“누구나 한 번쯤 연애 경험이 있지 않나요. 그러나 실제 연애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있는 장소와 장면이 연출되지 않죠. 이 드라마는 일상에서 주는 현실 멜로였어요. 일상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나도 저랬는데’ ‘연애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이 작품을 해서가 아니라 늘 자주 바뀌어요. 자유롭지만 안정적이고도 싶어요.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면 결혼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잖아요. 그 시기가 지났죠. 부모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요.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다가도 아닌 거 같기도 해요.”
‘예쁜 누나’는 현실 속 연애가 주는 설레임, 행복의 빛나는 순간은 물론 분노, 상처, 안타까움, 씁쓸함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이별이라는 어둡고 아픈 순간들까지도 모두 담아내며 시청자들을 웃고 울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리얼함을 담아내는 이 작품의 중심에 손예진이 연기하는 윤진아가 있었다.
“솔직히 답답했어요. ‘진아가 왜 이런 선택을 할까’ ‘솔직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윤진아는 미성숙하고 착한 사람이에요.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죠. 모든 걸 감수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진아의 첫 마음은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해요. 16회 중 정작 진아에 대해 얘기한 건 적었어요. 그 부분이 짠했죠. 완벽하게 성장할 수 없었는데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원했어요.”
일도 사랑도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 불안하고 씁쓸한 30대 직장 여성의 모습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며 친구의 동생인 서준희와의 사랑을 위해 용기 냈다. 윤진아라는 캐릭터에 갖게 되는 몰입도와 공감이 큰 만큼 난관에 부딪힌 상황에서 실수와 자책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 느끼는 답답함도 현실인양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꼭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하이힐을 신으면 너무 힘들어 운동화로 바꿔 신어요. 주변에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 익히 들었죠. 직장 내 업무적인 스트레스 외에 한 팀 내에서 오는 감정 스트레스도 크다고 들었어요. 듣다 보면 ‘어떻게 회사에 다니나’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크더라고요.”
‘예쁜 누나’라는 타이틀을 붙였음에도 실상 윤진아는 성숙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 사랑은 물론 직장 생활을 다루는 과정에서 비슷한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기도 하고, 절반의 성공에 그치기도 하고, 때론 의도치 않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처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 더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멜로드라마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난 구석 가득한 윤진아라는 캐릭터는 배우 손예진에게 큰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2018년 봄, 내 나이가 윤진아와 같아요. 이런 작품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배우는 게 많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시나리오를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의 폭이 넓어졌어요. 좋은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죠. 극 중에서 진아가 ‘이렇게 사랑받을 줄 몰랐다’는 말을 했어요. 배우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게 드라마 촬영장이에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손예진의 연기 내공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섬세한 감정 연기로 윤진아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친구 동생 서준희와 사랑에 빠진 후 겪는 감정선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멜로 퀸의 면모를 자랑했다. 또한 연애를 통해 점차 변화하는 윤진아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몰입감을 높였다. 더욱이 손예진은 첫 멜로 주인공을 맡은 정해인을 자연스럽게 리드하며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손예진과 정해인, 두 사람이 보여준 케미는 역대급이었다. 사랑스러운 연상연하 커플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며, 진짜 현실 어딘가에 진아와 준희 커플이 존재할 것 같은 설렘을 선사했다.
“유독 이번 작품을 하며 ‘정해인과 실제 사귀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왜 그러나 싶어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을 유심히 봤죠. 사람에 따라 풍기는 이미지와 성향이 다른데 (정)해인이와 나는 비슷해요. 투 샷이 잡히면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느낌이 강해 사람들이 더 그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해인이를 보며 데뷔 초 시절이 생각났어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촬영할 때가 떠올랐죠. 그즈음에 멜로물을 촬영했는데 이번에 온전히 서준희에게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나를 떠올렸어요. 해인이는 데뷔한 지 5년 차고 이번이 첫 주연작이라고 들었어요. ‘내가 저 연차에 저렇게 연기했나’ 하고 생각해 봤는데, 나는 저렇게 못했어요. 해인이와 준희의 싱크로율이 높았어요. 센스가 좋고 흡수력이 빨라요. 현장에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말하면 바로 연기가 나와요. 빠르고 유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감이 발달돼 있고 감성도 풍부해요.”
‘예쁜 누나’의 전개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진아와 서준희의 다시 시작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며 2개월여 간의 여정을 끝냈다.
“원래 대본에 적힌 엔딩은 몇 줄 안 됐어요.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참 얘기하고 진아가 웃는다’로 끝나는 건데, 해인이와 대화하다가 키스하는 신을 넣어야 한다고 감독님한테 말했어요. 감독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노을이 지는 배경으로 키스하는 장면을 넣었죠. 시즌2 얘기가 나왔는데, 박수 받을 때 떠날지 박수 받아도 남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해요. 16회를 덮고 나니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그 주변 사람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캐릭터의 모든 미래가 궁금해요. 실제로 그런 대본이 나와 해인이와 또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예쁜 누나’는 손예진과 정해인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 현실적인 회사 생활 이야기로 인기를 모았다. 최고 시청률 7.281%를 기록하는가 하면, TV 화제성 및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답답한 전개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두 사람의 사랑에 금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반대하는 것도 싫고 아름답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죠. 예쁘게 사랑하고 끝내면 좋겠는데 왜 저런 상황에 놓였고 왜 두 사람이 헤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갔는데 그게 우리 드라마의 다른 점이죠. 드라마는 누구나 하지 못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지점의 대리 만족이니까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사랑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치 않게 헤어지는 걸 보여 주려 했어요. 이 부분을 좋아한 사람들도 있고 실망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요.”
손예진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후배들이 존경스럽고 부럽다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여배우 중에서 몇 안 되는 열심히 일하는 배우다. 장르, 캐릭터의 폭도 넓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나이가 들어도 어울리는 멜로를 하고 싶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화양연화’ 같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두 작품의 스타일은 나이가 더 들어서 촬영하고 싶어요. 손예진은 열심히 사는 누나예요.”(웃음)
끊임없이 새로운 모험과 도전하고, 이를 통해 더 넓고 깊어진 연기로 내공을 보여주며 ‘역시 손예진’이라는 신뢰와 믿음을 공고히 하게 만드는 그의 연기 열정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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