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성적경쟁 몰아넣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

입력 2019-02-25 18:05  


미국에선 "헬리콥터 부모"가 아이의 학교 안팎 생활을 일일이 간섭한다. 반면 스웨덴과 독일에선 "숲속 유치원"이 인기다. 이곳에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이 어른의 간섭없이 뛰놀고 탐험 활동을 한다. 유치원 교육 과정에 국어나 산수 조기 교육도 없다. 교사들은 놀이와 손쓰는 기술을 강조한다. 중국에선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호랑이 엄마`에서 그려진 엄격한 양육이 중시된다.
나라마다 이렇게 양육법이 다른 이유로 문화가 많이 거론된다.
그러나 일본 부모의 양육 방식을 보면 불교와 유교 등 유사한 문화권인 중국보다는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독일과 네덜란드에 가깝게 나타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경제학 교수 마티어스 덮크 등은 지적했다.
`사랑, 돈 그리고 양육: 아이 양육 방식 차이의 경제적 이유`라는 책의 공저자로, 둘 다 경제학 교수인 이들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나라마다 다른 양육 방식 차이의 뿌리는 경제, 특히 경제적 불평등에 있다"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내모는 양육 방식이 대세인 나라들의 공통점은 빈부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반면, 빈부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 안전망이 잘 구비된 나라들에서 부모들의 양육 방식은 훨씬 느긋하고 아이들의 상상력 키우기 등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저자는 "초경쟁과 부모의 과잉 간섭을 줄이려면 그러지 말라고 고상하게 훈계하는 것으론 안되고, 그 문제의 뿌리인 불평등을 줄이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의 모임인 `세계 가치관 조사 협회(WVSA)`의 조사 자료를 활용해 근면, 복종, 상상, 독립 등 4가지 양육 가치관에 대한 부모들의 평가를 그 나라의 경제 불평등 지수와 짝지어 봤다.
그 결과 미국에선 부모의 약 3분의 2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최고의 가치로 `근면`을 들었다. 중국은 더욱 심해 90%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스웨덴에선 근면을 최고 가치로 내세운 응답이 11%에 불과했다.
경제적 불평등을 보면, 미국에선 상위 20% 가구의 소득이 하위 20%의 9배 가까이에 이른다. 중국은 9.5배가 넘는다. 스웨덴은 4.3배 정도.
일본은 이들의 주장의 시험 케이스. 불평등이 스웨덴보다는 크지만 중국보다는 작은 일본 부모들의 양육 태도는 중국보다는 독일, 네덜란드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대상 나라들의 불평등 지수와 근면 가치 중시 정도는 "놀라울 정도로"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불평등 지수가 낮아서 한 나라 안에서 교육 수준이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아이들의 미래 물질적 안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비슷한 생활 수준을 누릴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의 적성과 관심에 맞는 직업을 갖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해 아이들이 그것을 찾도록 창의적인 탐구 활동을 권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밝혀낸 경제적 불평등과 양육 방식간 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임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요인이 양육 방식과 불평등을 낳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게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나라 안에서 시계열적 변화를 봐도 자신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아이들에 대한 공부 압박이 덜했던 1970년대엔 압박이 심해진 지금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덜 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선진 경제국에선 1980년대 이래 불평등과 부모들의 통제적 양육 방식이 상승 추세"라며 "통제적 양육 방식은 불평등이 가장 빨리 증가한 나라들에서 가장 크게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터키와 스페인의 경우 독특하게 소득 불평등이 감소했는데, 양육 가치관으로 "근면"을 최고로 치는 응답도 적어졌다.
"불평등은 경쟁을 중시하는 양육 풍조를 낳고 이는 다음 세대에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늘날 미국에서 이를 목도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했다.
저자들이 특기하는 또 한 가지는, 좋은 학교에 대입시험 과외, 음악 과외, 운동 특기 등을 모두 갖출 수 있는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 계층 사이에선 이런 효과가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라는 사실.
소득의 점점 더 큰 몫이 상위 1%나 0.1%에 집중됨에 따라 소득 분포상 꼭대기 층 가까이 있는 부모들조차 불평등의 압박을 느껴서, 아이들을 한 단계 더 위로 밀어 올리려는 욕망은 식을 줄 모른다고 이들 저자는 지적했다.
1980년대 이래 더 많은 재산을 갖고 더 많은 교육을 받은 부모들이 다른 부모들에 비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아이들에 쓰는 시간과 돈의 양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조시형  기자

 jsh1990@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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