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산을 뜻하는 메(뫼)에 돼지를 붙인 단어로 산에 사는 돼지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 강원 강릉에서는 강가에서 물고기를 먹는 멧돼지가 출현해 화제다.
28일 강릉 남대천에서 조류 사진을 즐겨 찍는 A씨는 맹금류인 겨울철새 흰꼬리수리의 사냥 장면을 찍으려 카메라 뷰파인더를 주시하다 깜짝 놀랐다.
산에 있어야 할 멧돼지가 강가에 나타난 것이다.
갈대 등이 우거진 하천의 섬에서 나와 빠른 속도로 달리던 멧돼지는 까치와 갈매기가 모인 곳에 덤벼들어 그들이 맛보려던 죽은 숭어를 낚아채 도망가버렸다.
먹잇감을 빼앗긴 새들은 처음 겪는 황당한 일에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달아나는 멧돼지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역 조류 사진가들과 주민들에 따르면 한달여 전부터 새끼로 추정되는 멧돼지 2마리가 남대천에 출몰했다.
이들 중 건강한 멧돼지는 곧 자취를 감췄고, 다리를 다친 한 마리는 계속 남대천에 남아 겨울을 나고 있다.
멧돼지가 출몰하는 남대천 하구와 가까운 곳에는 멧돼지가 살만한 높고 깊은 산이 없는 데다 차량통행이 잦은 큰 도로가 둘러싸고 있어 멧돼지의 출현은 더욱 의아하다.
하지만 곧 그 이유가 밝혀졌다.
강원지역에서 유해조수 구조활동을 하는 심유진(36)씨는 이날 오전 남대천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기자에게 연락했다.
이 멧돼지가 지난해 자신이 덫에서 구조한 새끼 돼지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왕산면 대기리에서 다리가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던 새끼 멧돼지 3마리를 구조한 뒤 남대천 인근에서 돌봐왔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어리고 또 다리를 심하게 다쳐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울타리 안에서 새끼들을 정성껏 보살폈고, 이 같은 관심에 멧돼지 3형제는 무럭무럭 자라 어린 티를 제법 벗게 됐다.
이후 겨울 사냥철이 찾아왔고 멧돼지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이 근처에서 크게 짖어대자 놀란 돼지들이 울타리를 뛰쳐나가 도망갔다는 것이 심씨의 설명이다.
그는 "가장 건강한 녀석은 주민의 신고로 사살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나머지 2마리 소식이 궁금했는데 기사로 보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까닭에 남대천의 멧돼지는 오른쪽 앞다리를 절게 됐다.
멧돼지는 하루 한 번꼴로 나타나며, 하천 수위가 낮아지면서 죽어 있는 물고기가 드러나면 하천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나와 잽싸게 물고기를 물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멧돼지는 점차 대담해져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탐조대에 사람들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물고기를 물어간다.
주민 B씨는 "겨울에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멧돼지가 물가로 내려왔겠냐"며 "다리를 다친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멧돼지가 강가로 나오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는 "멧돼지는 물가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강가에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수영을 잘 해 인천의 섬과 섬 사이를 헤엄쳐 다닐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겨울철 부족한 먹이를 찾기 위해 강가까지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멧돼지는 주로 야행성으로 이러한 생태가 포착되는 것은 흔치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멧돼지는 활동반경이 40∼60㎞로 넓어 대관령 산지에서 동해안 지역 남부나 백두대간을 넘어 내륙지방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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