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고영욱 기자

입력 2019-03-07 17:01   수정 2019-03-08 11:09

“우려만 표명했을 뿐이다”
지난 2005년.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음주운전 3중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남기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이 해괴한 말은 유행어처럼 번졌고 “강요는 아니지만 조금 강압하겠다”는 식으로 지금도 다양하게 변형돼 쓰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이 하나금융지주 임원추천위원회에 속한 사외이사 3명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연임과 관련해 금감원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날 면담을 진행한 김동성 금감원 은행담당 부원장보는 `하나은행 경영진의 법률 리스크가 은행의 경영 안정성 및 신인도를 훼손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다음날(27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함 행장의 재판에 따른 법률 리스크를 살펴봐야 한다”며 함 행장의 연임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자 관치(官治) 논란이 터져나왔다. 금감원은 “민간은행의 인사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려를 표명하는 것까지가 감독 당국의 역할”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림자 규제` 논란
금감원은 민간은행의 인사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받아들이는 하나금융 측의 입장은 달랐다. 금융은 규제산업인 만큼 정부 당국의 눈밖에 벗어나면 정상적인 사업영위가 힘들다. 하나금융의 한 임원은 금감원의 우려에 대해 “우리가 무슨 의견이 있을 수 있겠냐. 가만히 있어야지”라고 말했다. 차기 행장 인선 판세가 180도 뒤집혔다는 의미이자 함영주 행장의 연임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당초 함영주 행장의 재연임은 당연한 수순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후 첫 은행장으로서 인사·급여·복지제도 통합을 이뤘고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올해 초 하나금융지주 경영지원부문 부회장에 재선임된 점도 함 행장의 연임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함 행장은 자연스럽게 차기 행장 1차 후보에 포함됐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금감원의 최초 우려표명이 있은 지 이틀만인 28일. 재연임이 유력시 됐던 함영주 하나은행장은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이날 열린 임추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금융지주 임추위는 신속하게 두 명의 차기 행장 후보군을 추렸고, KEB하나은행 임추위는 이중 지성규 글로벌부문 부행장을 차기 행장으로 낙점했다.

백기 든 하나금융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관치 논란을 자초하면서까지 차기 KEB하나은행장 인사에 관여한 배경으로 두 기관의 자존심 싸움이 거론된다. 지난해 3월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세 번째 연임 시도를 ‘셀프 연임’이라고 비판했다. 차기 회장 선출 과정에서 현직 회장이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금융은 김 회장의 연임을 강행했고, 김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반면 금감원은 역풍을 맞았다. 당시는 우리은행으로 시작된 채용비리 사태가 전 금융권에 확산되던 시기였다. 민간 출신인 최흥식 금감원장은 하나금융 사장 시절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임명된 김기식 금감원장까지 외유성 출장 논란으로 취임 2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금감원은 불과 6개월여 만에 수장이 두 번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금감원과 하나금융의 자존심 싸움은 하나금융이 백기를 들면서 일단락 됐다. 이달 26일 하나금융이 참여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인가 심사도 걸린 만큼 반기를 들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현실적인 분석도 나온다. 결국 함 행장은 물러날 때임을 알고 용퇴한 셈이다.

물러날 때를 안 함 행장
함영주 행장은 이달 4일 직원들에게 보낸 고별사에서 "사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은행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지난해 초부터는 구체적으로 조직의 세대교체와 차세대 리더에 대해 많은 검토를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은행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안정적 승계라는 하나금융그룹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갈 수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함 행장은 지난해 6월 채용비리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2015년 하나금융그룹 신입 공채에서 KEB하나은행에 지원한 지인의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인사부에 부정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함 행장은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다. 각종 공식석상에도 빠짐없이 얼굴을 비치며 위축되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함 행장이 재기할 발판이 없지 않다. 올 초에는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재선임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룹 내 공식 서열 2위다. 그동안 은행장이 지주회장에 올랐던 점에 비추어 보면 차기 회장도 노릴 수 있는 위치다. 다만 채용비리로부터 명예회복이 우선이다. 1심 재판 결과는 이르면 올해 말께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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