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여진구가 성인 배우들의 무대에 당당히 입성했다.
여진구는 지난 4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월화극 ‘왕이 된 남자’에서 광대 하선과 폭군 이헌 1인 2역을 연기하며 뛰어난 존재감을 뽐냈다. 그는 맞춤옷을 입은 듯 하선과 이헌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층 성장한 연기로 성인 배우로 거듭났다는 평이다.
2005년 데뷔 이후 차곡차곡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여진구는 고된 촬영을 이어 왔음에도 얼굴은 밝고 생기가 넘쳤다. 2018년의 무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겪으며 ‘왕이 된 남자’ 촬영장을 누볐던 그는 그간의 고생이 떠오르는 듯 종영 소감을 묻자 활짝 웃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라는 배우를 아껴주시고 저라는 배우를 받아들여준 현장이에요. 저를 제가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변화시켜준 작품이기 때문에 못 잊을 거 같아요. 그 전에도 의존하는 부분이 컸고 어떻게 할지를 질문했었는데 이번 연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제가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저만의 고집이 생긴 거 같아서 고마워요.”
‘왕이 된 남자’는 4일 10.9%의 평균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가구)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전혀 다른 문법과 서사를 사용하며 리메이크의 새 기준을 세웠다.
“마지막 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게 돼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칭찬도 많이 받고 시청자분들이 작품 자체를 사랑해줘 감동받았어요. 힘들 때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힘이 됐어요. 아직은 흥행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요. 당장 필모그래피도 중요하고, 흥행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20대, 30대 초반보다 그 뒤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여진구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이병헌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무거운 자리였지만 자기만의 연기를 유감없이 펼쳤다.
“이병헌을 지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선배님과 감독님이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김상경 선배님, 장광 선배님 등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1인 2역의 유혹이 가장 컸어요.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았죠. 무섭기도 했지만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커서 하게 됐어요. 1인 2역이기도 하지만 하선과 이헌이라는 역할 자체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하선을 통해서는 권해효(신치수), 장영남(대비)과의 정치 싸움부터 이세영(유소운)과의 로맨스, 이를 통해 성장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헌으로는 어둡고 퇴폐적인 내면을 표현하며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이헌 보다는 하선이 연기하기 더 어려웠어요. 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죠. 이헌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스타일로 모든 걸 다 바꿔버리는 역할인데, 이런 연기를 해본 적이 없고 원래 성격도 그렇지 않아서 어색하거나 아리송한 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하선이 더 표현하기 어렵고 막막한 감정이 더 많았어요. 선배님들과 연기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김상경 선배님은 대본만으로 확신에 찬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 너무 부러웠어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의심이 들었었는데, 선배님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조금씩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배우가 연기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어요. 멋있어 보였죠. 살아 있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포인트를 살려서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완벽한 감정 연기의 흐름을 보여주셨어요. 선배님은 자신을 넘어 확신을 가지고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장광 선배님을 보면서는 따듯하고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연기를 할 때 ‘어떻게 귀엽게 웃으시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많이 배웠죠. (이)세영 누나와는 실제로 설렘을 느끼며 촬영했어요. 멜로를 찍을 땐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때도 있고 두근거릴 때도 있었죠. 세영 누나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몰입했어요. 보기만 해도 감정이 잡혔어요. 워낙 거침없고 밝은 성격이라 먼저 다가와 줬고, 리허설도 적극적으로 했어요.”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치명적인 사랑과 풋풋한 사랑, 그리고 애틋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을 해왔던 그의 연애 경험이 궁금해진다.
“아직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격이 여러 가지를 못하는 성격이에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들기도 해요. 계속 성장해야 하는 시기 같아요. 조금 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기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연애를 해본 경험은 없지만, 애틋한 감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해를 품은 달’이나 ‘왕이 된 남자’까지 현실보다 더 애틋한 사랑을 연기해보기도 했어요. 그 감정에 대해 지치는 것도 있어요. ‘이렇게 사랑한다고?’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렇게 화살을 맞으면서도 사랑하는구나’ 할 때도 있어요. 연애는 안 해봤지만, 어려운 거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배우 여진구로서의 삶은 바쁘다. 벌써 차기작으로 tvN ‘호텔 델루나’를 확정 짓고 대본 연구에 들어갔다. ‘호텔 델루나’에서 구찬성 역을 맡아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예정이다.
“전에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어요. 많은 분이 체력을 걱정해주는데 지금은 연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스타일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스스로 정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됐고, 이 느낌 그대로 ‘호텔 델루나’에선 뻔뻔하고 패기롭게 나를 믿고 해보려고 해요.”
2005년 데뷔한 후 14년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새 데뷔 14년차 배우가 됐다. 현재 여진구의 나이가 23세이니 인생의 3분의 2를 연기자로서 보낸 셈이다. 인터뷰 내내 여진구는 자신이 연기자로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며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청년 여진구도 배우 여진구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청년 여진구의 삶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자체가 내 삶인 거 같아요. 배우 여진구로 사는 것이 제 삶인 거 같아서 열심히 연기 연습하고 공부하고 살죠. 학창시절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많아서 놀고 장난도 치고 술도 마셔요.”
여진구는 앞으로 군 입대 등 할 일이 많은 청년이다.
“군대는 저는 너무 건강하게 태어나서 ‘자신 있게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신경 쓰진 않아요. 언제 갈지에 대한 시기는 신중하게 정해야겠지만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욕심이 나고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진구는 자신의 목표를 좋은 배우로 삼았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닌 말 그대로 좋은 배우, 조금은 철학적인 표현이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은 저를 흔드는 것은 연기에요.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하고 싶고, 새로움을 느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저를 자극할 수 있었죠. 요즘은 더 연기를 잘 하고 싶고, 더 알고 싶어졌어요. 다양한 감정들을 알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연기가 인간 여진구에게 많은 영양을 끼치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 여진구가 연기를 하면서 사회경험, 연애를 배워 가는 것 같아요.”
현재까지 조금씩 제 길을 다져온 여진구. 그가 그린 하선 캐릭터 덕분에 ‘왕이 된 남자’는 완성도 있는 서사를 완성하며 뜨거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성인 배우로서 화려한 시작을 알린 여진구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박이 나면 감사하지만 작품을 잘 소화하지 못했거나 떳떳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 보여준 적 없는 캐릭터를 통해 혼도 나보고,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목소리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고민이 되기도 해요.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컨트롤 할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목소리가 앞으로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넘어야 할 산이에요.”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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