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경제] 회사 이름 바꿔야 할 판…배터리로 일 낸 LG화학

김종학 기자

입력 2019-03-27 14:12   수정 2019-03-27 14:45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로 시작해 석유화학 부산물로 가전기기나 자동차 등에 쓰일 첨단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LG화학.

    산업용 소재로 연 매출 28조 원, 미국 듀폰을 제치고 브랜드가치 세계 3위에 오른 국내 최대 화학 기업인 이 회사가, 어쩌면 이름을 바꿔야할지도 모를 일이 생겼습니다. LG화학이 아닌 LG배터리로 말이죠.

    벌써 30년이나 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그룹 부회장이었던 고 구본무 회장의 영국 출장길. 영국 원자력연구원을 찾은 구 회장은 충전식 배터리의 사업성을 깨닫게 되죠. 건전지를 쓸 곳이라곤 워크맨 카세트밖에 없던 시절에 충전식 배터리라니, 상상이 가시나요?

    LG화학은 배터리 연구소를 만들고 연간 2천억원씩 개발비를 쏟아부어가며 양극재, 전해질 등 핵심 소재를 하나씩 개발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고, 사업부문 적자가 이어지자 내부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않았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사업부도 아닌 적자부서에서 10년씩 버텼다고 생각해보세요.

    노트북컴퓨터, 전동공구에 소형 2차 전지를 납품해가며 사업을 이어가던 LG화학은 2008년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됩니다. 아이폰을 선보인 애플과 손잡은 뒤 전세계 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의 폭발적으로 성장으로 소형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로 경쟁자였던 일본 기업들을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더 놀라운 건 2000년 사업을 시작한 전기차 배터리입니다. 20년간 납품할 곳도 없어 수 조원씩 까먹기만하던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작년 가을 처음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겼습니다. 한국 현대-기아차, 미국 제너럴모터스, 유럽의 폭스바겐그룹,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어 달라며 맡긴 주문만 85조 원 어치에 달합니다.

    미국 테슬라와 독점 계약한 파나소닉을 제외하고 기술장벽이 높은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몇 안되는 회사. 게다가 테슬라에 쓰이는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가 무겁고 부피가 큰 반면 LG화학이 생산하는 리튬이온 폴리머배터리는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얇게 포장해 차량 설계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LG화학을 포함해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회사가 작년 한 해 동안 수주한 물량만 1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막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이제부턴 누가 더 많이, 더 저렴한 가격의 배터리를 공급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나뉠 전망입니다.

    베일에 가려진 중국 CATL, 테슬라 파트너인 파나소닉 등 강자들이 버티고 있지만 20년 전부터 준비해온 한국의 배터리 회사의 경쟁력이라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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