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들 잃을까 애타는 '모정'…흰뺨검둥오리 가족 구출작전

입력 2019-05-14 19:13  


"어린 오리들이 차가 빨리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주세요."
14일 낮 12시 10분께 강원 강릉시 홍제동 강릉시청 앞 도로.
주민 김계화(홍제동)씨는 이날 시청에 일을 보러 왔다가 새끼들과 떨어진 흰뺨검둥오리 무리를 발견했다.
인도 아래 도로로 떨어진 어린 오리 13마리는 한뼘 정도 되는 도로 턱 위로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미는 도로와 인도 사이를 오가며 애타게 새끼들을 독려했으나 어린 오리의 키보다 2배가량 높은 도로 턱을 오를 수는 없었다.
강릉시청 직원들은 신고를 받은 야생동물협회 관계자가 올 때까지 바가지에 물을 떠주며 어린 오리들이 탈진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직원들은 새끼들을 손으로 올려줄 수 있었으나 이럴 경우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차량이 많이 다니는 도로로 달아나면 더 위험할 수도 있어 새끼오리가 이탈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강릉시지부 관계자가 뜰채로 어미를 생포하려고 했으나 어미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어미 오리는 날개를 다친 것처럼 하는 의태 행동까지 보이며 야생동물보호협회 관계자를 유인하듯 달아나다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오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미는 새끼들이 있는 상자 주변으로 다시 찾아오는 등 끝까지 새끼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미 오리 생포를 사실상 포기한 야생동물보호협회는 새끼만 거둬 춘천에 있는 야생동물 관련 기관으로 보낼 방침을 세웠다.
이럴 경우 춘천과 강릉은 자동차로만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거리여서 어미와 새끼는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때마침 점심을 마치고 들어오던 김한근 강릉시장 등이 새끼를 생포하기 위해 놓아둔 상자 위에 양산을 씌워주는 등 관심을 보이면서 작전은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이들은 오리 가족이 도심 도로에 등장한 것이 이소 시기를 맞아 인근 남대천으로 가려는 것으로 보고 생포 대신 유도 작전을 쓰기로 했다.
조해준 강릉시청 주무관이 새끼 오리가 든 상자를 들고 남대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어미 오리가 서서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차량이 질주하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장애물이었지만 어미 오리는 한순간의 망설임조차 없이 힘껏 날아올라 도로 맞은편에 안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량 소음이 장애물이었다.
트럭과 각종 차량이 질주하는 소리가 새끼의 울음소리보다 더 컸기 때문에 어미가 새끼를 따라가는 데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어미 오리는 도로변 가시덤불 사이로 숨어 따라오기 시작했다.
오리들의 최종 안착지인 남대천을 앞두고 이번에는 차량이 끊이지 않고 지나가는 또 다른 왕복 4차선 도로가 버티고 있었다.
야생동물보호협회 관계자도 과연 어미 오리가 대로를 건널 수 있을까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이번에도 어미 오리는 사람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치솟아 도로 맞은편에 내려앉았다.
이후 어미는 공사 현장 등을 지나며 새끼를 따라 남대천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 주무관이 마침내 남대천에 도착해 새끼들을 한 마리씩 강물에 놓아주기 시작하자 어미가 나타나 풀숲으로 인도했다.
어미와 새끼들이 헤어질 뻔하다가 2시간 만에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박종인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강릉시지부장은 "요즘 이소 시기를 맞아 도로변으로 나오는 동물이 많다"면서 "새끼 오리로 어미를 유도해 서식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킨 것은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조 주무관은 "어미 오리가 잘 날 수 있으면서도 날개를 다친 듯이 행동한 것은 사람들을 자기가 있는 쪽으로 유도해 새끼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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