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사장`, `프로 가수`, `방송인`, `시사평론가`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쳤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정두언 전 의원이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마포에 일식점 개업을 앞두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닌 방송인, 그리고 음식점 사장으로 `인생 2막`을 새롭게 설계했던 정 전 의원이 16일 오후 유서를 남긴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정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정 전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끝으로 정치권으로 방향을 돌렸다.
2000년 한나라당 대변인에 이어 2002∼2003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 전 의원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부터 19대 총선까지 서울 서대문을에서 내리 당선됐다.
초선의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당에 아무런 뿌리가 없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에 거의 유일하게 앞장섰다.
결국 2007년 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정 전 의원은 개국 공신으로서 `왕의 남자`로 우뚝 섰다.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과 조각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듯했지만, 권력의 암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인수위에서 밀려나온 정 전 의원은 2008년 6월 `만사형통`(모든 것은 형으로 통한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막강했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겨냥해 `권력의 사유화` 발언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이미 그해 4월 제18대 총선에서 이 전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의 선봉에 서면서 여권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그다.
정 전 의원이 최근까지 이 전 대통령을 `저격`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이때가 시작이다.
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다스` 수사가 이뤄지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내가 다스를 만들었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한 게 여론 악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의 개국 공신이었지만 정권 말기인 2012년에는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됐다. 급기야 이듬해에는 3선 의원 신분으로 법정 구속까지 이뤄져 구치소에서 꼬박 만 10개월을 살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두 정치 인생이 끝난 것으로 예상했지만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극적으로 부활, `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상임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대문을에 다시 출마했지만 4선 달성에는 실패했다.
낙선 이후에도 종편 채널의 시사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때로는 패널로서 종횡무진했던 정 전 의원은 정치인이 아닌 방송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정 전 의원은 또 국회의원 시절에는 4집 앨범까지 내 `가수 의원`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드라마 음악에도 도전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 정 전 의원을 만난 한 정치권 인사는 통화에서 "정 전 의원이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최근까지도 약을 먹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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