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잇따른 대규모 총기참사로 규제 목소리가 한층 고조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난사의 원인을 또다시 총격범 개인의 `정신병` 탓으로 돌렸다.
총기 참사 직후만 해도 규제 목소리에 힘을 보태던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 옹호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와 접촉한 후 또다시 뒷걸음질을 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최대 로비단체인 NRA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최대 원군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총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100번을 말했다"면서 "그 사람들은 아프다"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지난 15일 뉴햄프셔 유세에서 "방아쇠를 당긴 그 사람이 문제"라며 "정신병원 확충을 심각히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총기 관련 언급은 그가 NRA 최고경영자인 웨인 라피에어와 전화 통화를 한 당일에 나온 것이다. 백악관과 라피에어는 두 사람의 통화 사실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헌법에 담긴 총기 소유권을 강력히 신봉하며, 이는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그들은 그것을 `미끄러운 비탈`이라고 부른다.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총기 소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는 지금 매우 강력한 신원조회 권한이 있지만 완전한 원을 완성하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이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며, 대신 정신질환 문제를 살펴보는 것에 대해 말했다고 WSJ은 전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수정헌법 2조(총기소유권), 개인의 정신 건강과 폭력 성향에 무게를 두는 등 국민 보호를 위한 책임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신원조회는 논의하지 않았다"며 백악관은 개인 간 총기 거래가 아닌 상업적 총기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과 4일 텍사스주 엘패소 쇼핑단지 내 월마트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이틀 연속으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31명이 숨지자, 총기 구매자에 대한 광범위한 신원조회를 승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엘패소가 고향인 베토 오로크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들에 대한 책임론이 쏟아지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불과 며칠 만에 총기난사 원인을 총격범 개인 문제로 몰아가고 신원조회 범위도 제한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야당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민의 안전에 반하는 총기 로비단체에 동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척 슈머(뉴욕)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후퇴는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가슴 아픈 일"이라며 "특히 총격사건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신원조회 강화 법안을 하원에서 처리했다. 그러나 상원에서는 다수당인 공화당에 가로막혀 법안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7명의 학생과 교직원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격사건 당시에도 전면적인 대응을 촉구했으나, 결국 NRA의 압박에 뒤로 물러섰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NRA와 보수주의자, 몇몇 정치 고문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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