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18세 고등학생, 경찰 실탄 맞아 중태…"시진핑 초상화 불탔다"

입력 2019-10-01 23:36   수정 2019-10-02 08:41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베이징은 사상 최대 열병식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홍콩에서는 `국경절 애도 시위`가 벌어져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 한 시위 참여자는 경찰과 충돌하다가 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시위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등 극심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이날 오전 8시 홍콩 완차이 컨벤션센터 앞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서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식이 거행됐다.
매년 홍콩 정부 관료와 저명인사들은 실외 광장에서 국기 게양식을 지켜봤지만, 올해는 시위를 우려해 실내에서 지켜봤다.
컨벤션센터 주변에는 물대포 차 2대가 배치되는 등 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240명 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향한 캐리 람 행정장관을 대신해 기념사를 한 매튜 청 홍콩 정무부총리는 "급진적인 시위대가 불법 집회와 파괴로 법과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고, 홍콩은 1997년 주권반환 후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많은 위기를 이겨냈다"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했다.
이날 오전 야당인 사회민주연선이 주도한 시위의 참가자 수십 명은 국기 게양식이 열린 골든 보히니아 광장으로 행진하다가 친중파 시위대와 충돌하기도 했다.
행진에 참여한 전직 의원 룽궉웅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우리는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희생자를 애도하고,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곳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 시위를 시작으로 홍콩에서는 대대적인 `국경절 애도 시위`가 펼쳐졌다.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해 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당초 이날 오후 2시 코즈웨이베이 빅토리아 공원에서 시작해 센트럴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지만, 경찰은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며 불허했다.
민간인권전선은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 희생자, 중국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가 투옥돼 사망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등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국가에 의해 희생됐으므로 국경절은 국가의 경사가 아닌, `애도의 날`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애도`의 의미에서 시민들이 검은 옷을 입을 것을 촉구했다.
경찰의 불허에도 수만 명의 홍콩 시민들은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독재정치를 끝내고, 시민에게 권력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국경(國慶)은 없다, 국상(國喪)만 있다`는 주제로 행진한 이들은 홍콩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지역과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까지 행진했다. 일부는 중국 중앙정부 연락사무소가 있는 사이잉푼 지역으로 향했다.
홍콩 도심은 물론 웡타이신, 사틴, 췬안, 툰먼, 야우마테이 등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했다.
홍콩 췬완에서는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던 시위 참여자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가 경찰을 둘러싸고 공격하던 중 이 시위 참여자가 경찰의 옆에서 쇠막대기를 휘둘렀고, 이에 몸을 돌린 경찰은 들고 있던 권총으로 실탄을 발사했다.
부상자는 췬완 지역의 중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8세 남학생으로 확인됐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이다.
홍콩 의료 당국에 따르면 이날 시위로 인한 부상자는 31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2명이 위중한 상태이다.
카오룽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차를 둘러싸고 공격하자, 경찰 한 명이 권총을 꺼내 두 발의 실탄 경고사격을 했다. 췬안과 야우마테이 지역에서도 경찰이 시위대에 맞서 경고사격을 하는 등 이날 수 차례의 실탄 경고사격이 있었다.
최루탄과 물대포, 후추 스프레이 등을 쏘며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에 맞서 시위대는 화염병과 벽돌 등을 던졌다. 웡타이신, 완차이 등 여러 지역에서 시위대가 도로 위에 폐품 등을 모아 불을 질렀고, 곳곳의 지하철역을 파손했다.
경찰은 툰먼 지역에서 시위대가 부식성 액체를 사용하는 바람에 경찰관들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부식성 액체에 녹아내린 진압복 사진과 화상을 입은 경찰관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신중국 건국 70주년인 이날 홍콩 시위대는 극심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조던 지역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막사 인근에서는 시위대가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초상화에 불을 붙여 태웠다.
시위대는 친중국 성향을 보이는 기업의 점포를 공격하고, 길거리에 게양된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깃발과 현수막 등을 찢었다. 친중파 의원 주니어스 호 의원의 사무실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완차이 지역에서는 국경절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검은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애드머럴티 지역의 고가도로에는 `하늘이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위대는 장례식에 쓰이는 가짜 돈을 태우기도 했으며, 시진핑의 사진을 도로 바닥에 붙여놓고 밟고 지나갔다.
시위대가 미국, 영국 등 74개 민주주의 국가의 국기와 유엔, 유럽연합(EU) 깃발 등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경찰은 홍콩 시내 전역에 6천 명을 배치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수천 개의 도심 쇼핑몰과 점포는 이날 시위를 우려해 문을 열지 않았다. 중국은행 건물 등 시내 사무용 빌딩들은 건물 주변에 펜스를 설치하고 국기 게양대를 철거하는 등 시위에 대비했다.
홍콩 지하철공사는 애드머럴티, 완차이, 프린스에드워드 등 시위가 발생한 지역의 지하철역을 모두 폐쇄했다. 전체 91개 역 중 25개 역이 폐쇄됐다.
홍콩국제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고속전철도 홍콩 역을 제외한 카오룽, 칭이, 아시아월드엑스포 등의 역이 모두 폐쇄됐다.
친중 단체인 `세이프가드 홍콩`은 1만 명의 지지자들을 동원해 시내 곳곳의 중국 국기를 시위대로부터 지키는 운동을 벌였다.
자칫 지난 주말 시위와 같은 대규모 체포도 우려된다.
일요일인 지난달 29일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로 지난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 시작 후 하루 기록으로는 최대인 146명의 시위 참여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여기에는 12세 학생도 포함됐다.
지난 토요일 시위까지 합치면 모두 157명이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43%는 학생이었다. 이날만 오후 5시까지 이미 51명이 체포됐다.
시위대는 사복경찰이 경찰차에서 나와 보도블록을 깨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점 등을 들어 시위대로 분장한 경찰이 일부러 폭력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위대로 위장한 경찰이 완차이 전철역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도 돌고 있으나, 홍콩 경찰은 "우리는 절대 불법 행위를 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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