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7일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표기된 `마사카키`(眞신<木+神>)라는 공물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각료가 2년 반 만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등 이 신사의 제사를 계기로 최근 새로 구성한 내각의 우익 성향이 부각됐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 첫날인 17일 오전 공물의 일종인 `마사카키`(眞신<木+神>)를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했다고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아베 총리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이름으로 마사카키를 보냈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도 마찬가지로 마사카키를 봉납했다고 신사 측은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1주년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그 외에는 2차 세계대전 패전일(8월 15일)과 봄·가을 제사에 공물 또는 공물 대금을 보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참배는 하지 않고 공물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내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를 기념하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아베 총리가 참배하면 국제사회의 반발로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이 17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위해 본전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일본의 패전일과 예대제에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7년 4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이후 2년 반 만이다/연합뉴스)
한편, 이날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오키나와·북방영토 담당상은 이날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직접 참배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의 패전일과 예대제에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2017년 4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이후 2년 반만이다.
에토 담당상은 총리 보좌관을 지낸 아베 총리의 측근 중 한 명으로, 극우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망언을 반복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8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과거 일본에선 한국을 매춘 관광으로 찾았는데 나는 하기 싫어서 잘 가지 않았다`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
또 과거 `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불법적인 정황을 찾지 못했다`는 발언을 한 적 있으며,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미국이 실망 메시지를 내자 "실망한 것은 오히려 우리 쪽"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에토 담당상은 이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위령하는 참배를 했다. 일본의 평화와 국민의 행복을 빌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각료 신분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행위는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침략 전쟁을 미화·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에토 담당상이 거론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위란 타국 국민에게 심대한 고통을 안겨준 침략 전쟁에 동참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하이덴`(拜殿) 앞에서 참배객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 인사의 참배는 중국과 한국 등 일본의 침략 전쟁·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받은 국가의 비판을 사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일본의 침략전쟁 역사를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을 보내고 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만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발동한 대외 침략전쟁의 도구이자 상징"이라면서 "일본 측은 침략의 역사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를 또다시 드러냈다"고 비판하며 일본 정부에 엄중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18일에는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야스쿠니신사를 집단으로 참배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개각에서 평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우익 사관을 옹호한 이들을 대거 기용하는 등 우익 성향을 측근을 전진 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으며 결국 2년 반 만에 각료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일본 패전일인 2019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서 방문자가 욱일기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야스쿠니신사의 제사를 계기로 일본 정치권의 퇴행적인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되풀이될 전망이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기타가와 가즈오(北側一雄) 중앙간사회 회장은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 "한국과 전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의 관계"라고 현 상황을 진단하고서 "각료로서 참배는 신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강하게 항의한다. 과거의 침략전쟁을 예찬·찬미하는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그 역사관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민당의 마타이치 세이지(又市征治) 당수도 "아베 총리와 가장 가깝다는 인물이 감히 만용을 부린 것"이라며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사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각료의 참배에 관해 "사인(私人)으로서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정부가 견해를 말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약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극동 군사재판(도쿄재판)의 판결에 따라 교수형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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