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키워드 '리플레이션'...투자·기업 성적 판가름

최진욱 기자

입력 2019-12-27 06:01  

2019년이 저물고 2020년 새 해가 다가왔다.

혼란과 갈등을 뒤로 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차분하게 한 해를 준비할 때다.

2020년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리플레이션(Reflation)’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아직은 심한 인플레이션까지 이르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2020년 왜 리플레이션이 화두가 되는가? 투자와 기업성적표를 좌지우지할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12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결정 이후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금리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상당하고(siginificant) 지속적인(persistent) 물가 상승이 필요하다.”

(자료: Fed / 물가,기준금리 전망)

이 말의 속뜻은 2020년에도 스스로 물가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본 Fed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강화된 금융규제와 자금부족으로 초단기금리인 리포(repo) 금리가 급등하자 내년 2분기까지 매월 600억달러의 1년 미만 국채매입(QE)에 나선 Fed로선 선택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Fed의 의도대로 된다면

<2019년 완만한 물가상승> => <물가목표치 달성> => <QE 중단> => <기준금리 인상>의 순으로 다음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다.

(자료:하이투자증권 / 미국PCE(Price of Consumer Expenditure) 물가)

10여년 이어온 미국의 장기호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조업과 고용시장의 둔화세가 나타났지만 2020년만 의도대로 경제가 운용된다면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압력도 피하고, 호황 뒤에 찾아올 불황을 대비할 수 있는 여력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중국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중국의 각종 실물과 금융지표는 초고속 성장의 그림자로 무역전쟁으로 수출이 타격을 입자 중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높였다.

달러-위안 환율절하(환율상승)로 대응하던 중국은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재정투입과 함께 정책금리를 낮추고 싶었지만 이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환율절하를 과도하게 용인할 경우 국제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금리가 폭등하면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 NH투자증권/중국CPI)

돼지열병 파동으로 폭등한 식품가격을 제외한 중국의 소비자물가(CPI)는 하락세를 보였다. 그만큼 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중국은 더 이상 미국과의 합의를 미룰 여유가 없었다.

위안화의 안전을 담보하는 내용이 1단계 합의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1월 초 두 정상이 합의안에 서명한다면 중국은 곧바로 지급준비율 인하, 기준금리 인하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과잉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디레버리징(Deleverging)은 주춤하겠지만 부실을 드러낼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중국도 완만한 물가상승이 절실하다.


[일본]
(자료: NH투자증권/일본CPI)

일본은 길게 언급하지 않아도 물가상승이 가장 필요한 선진국이다. ‘잃어버린 20년’이 끝없이 연장되면서 ‘아베노믹스’가 무색할 정도다.

결국 아베 정부는 대차대조표가 커질 대로 커진 일본은행(BOJ)을 대신해 12월에 26조엔(우리 돈 284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유동성과 경기부양의 함정에 빠진 일본은 물가를 올리기 위해서 그 어떤 정책수단이라도 동원할 것이다.

‘제로금리’와 절대적 고령화로 세계 최대 수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몸부림 칠 것이다.


[EU]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 변수를 제외하면 유로존은 2019년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는 오히려 반등의 조짐이 보인다. 고용이 완만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무역전쟁이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면 재고조정에도 도움이 된다. 일부 회원국의 재정상태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임 라가르드 총재는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정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9년부터 마이너스 기준금리정책을 도입했던 스웨덴이 10년 만에 이를 포기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증가에 항복한 것이다. 이젠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정치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독일 메르켈 총리는 완강하게 재정지출을 거부하고 있다.

(자료: 신한금융투자/유로존 CPI, GDP)

하지만 정권재창출을 위해선 과거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회원국간 경제력 격차와 도덕적 해이 사이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라가르드 총재가 언급한 바로 방법이 필요하다. 그 결과는 물가상승률로 확인이 가능하다.


[투자?기업 성적 판가름 할 리플레이션]

상황이 이렇다면 완만한 물가상승에 대비해야만 기업도 투자자도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 정확하게는 미국 행정부를 제외한 ? 각국의 공조가능성이 높아졌고 미국의 장기 호황 이후를 대비하는 치열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합의된 의견이 나오지 않더라도 대비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을 마련하는 일에는 그 어떤 나라도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 리플레이션 시대에는 대체로 미국 달러화의 약세 (스마일 달러 이론), 신흥 통화의 강세가 나타났었고, 주식이 채권을 압도했다. 기업들은 합종연횡을 통한 새 판짜기가 진행됐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동종업종 뿐만 아니라 이종업종 사이에도 활발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진행될 것이다.

만약 2020년에 리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전 지구적인 경기둔화로 금과 미국 달러화, 마이너스 금리정책으로 채권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기업들은 자산매각/부채감축, 인력 구조조정, 계열사/사업부 통폐합으로 ‘버티기 경쟁’에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모건스탠리 부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취 예일대 교수는 이 같은 위험을 촉발할 수 있는 ‘3P’를 제시했다. 보호주의(protectionism)와 포퓰리즘(populism), 정치적 기능장애(political dysfunction)가 바로 그것이다.

과연 리플레이션의 시대에 한국 정부와 중앙은행,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부는 내년 경기를 뒷받침 하기 위해 500조가 넘는 대규모 예산을 확정했고, 한국은행은 올해에만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안팎의 어려움으로 힘들었던 올 한해를 생각하면 2020년 세계적인 흐름에 걸맞는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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