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차이점 찾기 어려워
무궁한 활용도·부작용 동시에
전세계 4,500여개 가전·IT기업들이 저마다 기술을 뽐냈던 CES 2020. 그 드넓은 박람회장 한 부스에서 저는 불현듯 실직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부스에 비치된 스크린 속 기자는 저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자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인공인간`이었다는 점입니다.
(▲ 기자 `네온`의 모습. 인이어를 점검하는 디테일까지 살렸다.)
우리와 닮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스크린 속 아바타
삼성리서치아메리카 산하 연구소 스타랩에서 선보인 새로운 기술 `인공인간`은 다소 생소한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과 `인조인간` 이런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하죠.
`인공지능`이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고, `인조인간`이 전통적으로(만화 같은 곳에서) 인간형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면 `인공인간`은 `인공지능`과 `인조인간`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아주 유사한 스크린 속 `아바타`가 바로 인공인간 네온입니다.
스타랩은 "네온은 우리와 닮았고, 가상의 존재지만 독립적이며, 감정을 나타내고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AI 비서와 달리 네온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날씨를 알려주거나 음악을 틀어주는 인터넷 인터페이스가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 다양한 `네온`의 모습. 인종·직업군까지 다양하다.)
`언캐니 밸리` 넘어 실제 인간의 모습·행동까지 유사
사실 기술적인 부분(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을 차치하고서라면, 우린 이미 유사한 이미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1998년 혜성처럼 등장했었던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입니다. 이 친구는 너무나도 CG이라는 것이 티가 나서 오히려 정감이 가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 사이버가수 `아담`의 모습. 확실히 CG 티가 난다.)
반면, 먼 후손 격인 네온은 외견뿐만 아니라 행동의 디테일까지 위화감이 없이 진짜 인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언캐니 밸리`라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불쾌한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언캐니 밸리`는 일본의 한 로봇공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입니다.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죠. 로봇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인간과 닮은 인형, 3D 애니메이션, 광대, 좀비를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에도 적용되는데요.
(▲ X축이 인간과 유사도, Y축이 친근함이다. 친근함이 급격하게 떨어져 계곡처럼 파인 부분이 `언캐니 밸리`다.)
네온이 인간과 이렇게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 `언캐니 밸리` 마저 극복했다는 소리가 됩니다. 소피아 같은 AI 로봇이 기존에 가졌던 외양적 한계를 넘었다는 거죠.
(▲ AI 로봇 소피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미디어 연관 직업 하나둘 사라질지도
다시 돌아와서 ▲학습 능력을 가진, 거기에 ▲인간과 꼭 닮아 불편하지 않은 어떤 존재 `인공인간`. 이들이 실제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면, 전달자로서 기자의 역할은 `인공인간`들에게 넘겨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기자라도 실수가 `0`일리는 없으니까요.
`인공인간`들은 감정의 동요로 실수를 하지도 않을 테고, (증강현실 기술 등을 활용한다면) 위험한 장소에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을 테니 완벽합니다. 사실 스포츠나 증권 시황 등의 정보 전달 패턴이 있는 뉴스의 경우 `봇(Bot)`들이 이미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공인간`은 인간 기자들의 더 많은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겠죠.
과연 기자라는 직업에만 국한될까요? 아닐 거라고 봅니다. 영상을 주 무대로 하는 상당수의 직업이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인공인간` 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언젠가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인간 배우가 아닌, IT 기업이 노미네이트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활용도 무궁하지만, 아직은 조금 부담스러운 기술
`인공인간`이 가진 활용도를 삼성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인공인간` 개발을 담당한 프라나브 미스트리를 전무로 승진시켰습니다. 미스트리는 올해 삼성전자의 최연소 전무이자 유일한 30대 전무로 이름을 올리게 됐죠.
(▲ 삼성전자 최연소 전무에 오른 `프라나브 미스트리`. 네온 개발을 담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인공인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은 모양새입니다. `인공인간`을 공개한 올해 CES에서도 `네온`의 부스는 삼성전자와 별도로 차려졌습니다. 그것도 꽤 거리를 두고서요.
`가짜뉴스`나 `페이크영상` 등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쉽게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보입니다.
파괴적 신기술 앞에서 인간은?
네온을 보면서, `나보다 잘 생긴 데다 전달력까지 좋은 인공인간 기자`보다 내가 우위에 서 있는 점이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쉽게 찾아낼 수 없더군요.
첨단 기술의 현장에서 우리 삶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혁신기술을 보면서, 이들이 인간에게 단순히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같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 없이 살다 보면 실직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아닐거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아니 인류 전체가 직면한 과제겠죠. 그렇지만, 우선 저는 동료 기자들과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 얘기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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