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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부상하는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3-23 17:4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상치 않다.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가 10조 원을 넘었다. 거래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6천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우리 경제 역사상 가장 많다. 그만큼 이탈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다. 일부 비관론자를 중심으로 ‘이러다간 외환위기가 다시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는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공통적인 위기 경로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거짓 신호’이든 ‘진실 신호’ 이든 간에 위기 징후가 가장 먼저 포착되는 것은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에 의해 CDS 프리미엄이 상승하기 시작해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2배 이상 벗어나면 외국인 자금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위기 경험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후 상황이 더 악화돼 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4배 이상 벗어나면 외국인 자금은 갑작스럽게 이탈 단계로 바뀐다. 위기 발생국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통화 가치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외환보유액 동원한 시장 개입과 외환시장 안정화 논의가 급진전된다.

이때부터 외환위기 우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과 위기 발생국 통화 가치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외환보유액을 풀기 시작하고 실물경기도 침체국면에 들어간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긴급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 CDS 프리미엄이 하락국면에 들어가지만 실물경기는 더 침체되고 국민이 겪는 고통은 상당기간 지속된다.
위기 발생국이 겪는 비슷한 경로는 정책 대응에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다양한 방지책 가운데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쌓느냐’가 외환위기 발생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이 자본 자유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자금의 실체가 레버리지 투자(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를 즐기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당초 전혀 예상치 못한 사유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증거금 부족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는 한꺼번에 대규모 외국인 자금이 이탈되는 과정에서 위기가 발생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 놓은 국가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서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베이시스 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보유액을 ‘국제수지 불균형의 직접적인 보전과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전할 목적으로 통화당국이 즉시 사용 가능하고 통제될 수 있는 교환성이 있고 시장성이 높은 대외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라는 전통적인 목적만을 중시한 외환보유액 개념이다. 하지만 자본자유화가 진전되고 외환위기가 자주 발생되는 여건을 감안해 새로운 외환보유액 개념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있다.

특정국의 적정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환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도 외환보유액 보유 동기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그린스펀-기도티 기준’, 그리고 ‘캡티윤 기준’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적정외환보유액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나 적정외환보유액 규모를 놓고 논란이 끝이지 않는다.
다른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도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추진돼 왔다. 각 대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논란이 있으나 외환보유액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쌓아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 이탈됨에 따라 오랜만에 그 톤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표 접근법에 의한 세 가지 기준별로 한국이 처해 있는 특수한 여건 등을 감안해 적합성을 따져보면 IMF 기준은 갈수록 자본시장을 통한 자본거래의 영향이 증가되는 여건 하에서는 부적합하다. 최근 들어 이뤄진 적정외환보유액과 관련된 논의와 연구에서도 IMF 기준에 의해 외환보유액을 쌓으라고 주장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 이후 신흥국의 적정외환보유액 개념으로 많이 거론되는 그린스펀-기도티 기준도 한국 증시는 외국인 비중이 유난히 높은 이른바 윔블던 현상이 심하고, 북한과의 대치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 기준에 의한 적정외환보유액도 부족하다.

캡티윤 방식은 갑작스런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응하는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안이나 불태환 개입비용, 대체투자 상실비용 등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이 많아지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금융안전망 구축, 제2선 자금인 인접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이 방식에 의한 적정외환보유액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지표 접근법에 의한 세 가지 기준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적정 외환 보유액을 가져갈 것인가는 그때마다 달라지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외채 구조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자유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외국인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 다른 위기와 달리 피해가 큰 점을 감안하면 각국은 `기도티 기준‘이나 `캡티윤 기준`에 의해 적정외환보유액을 산출하고, 이를 잣대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증대되는 추세다.
지난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로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1선과 2선 자금을 합하면 6천억 달러에 달한다.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외환보유액보다 2천억달러 이상 많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레바논 등 일부 신흥국에서 모라토리움(국가채무 불이행)이 발생하고 있으나 한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신흥국이면 몰라도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제2의 외환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infordemic), 즉 잘못된 정보에 해당한다. 코로나 사태로 혼란된 틈을 타 자신만 살겠다고 달러를 사들이는 투기 세력은 나중에 큰 화(禍)를 당할 수 있다. 모두가 포로 보노 피블릭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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