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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선제적(preemptive) 자산관리…디스토피아 시대에는 왜 중요한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3-30 10:09  


매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5년 전부터 단골 메뉴로 다뤄왔던 과제가 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같은 ‘디스토피아(dystopia)’다. 미국도 `우리 국민, 우리 미래(our people, our future)`라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제시됐던 미래 아젠다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인간 현실 세계의 이상향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으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상(像)을 말한다.
디스토피아 사상이 담긴 문학 작품으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1945)>이 꼽힌다.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환경 문제로 지구는 태양이 사라져 어두운 세계가 되고, 다른 하나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돼 치안과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리고 대도시와 위생환경이 사람보다 쥐에 익숙하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WEF는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위험 요인으로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등 5개 분야에 걸쳐 총 28개의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표했다. 28개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 등의 기준으로 각각의 순위를 매긴 점이 특징이다. 각국 정책당국자와 기업인, 금융인 그리고 개인이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도 역력하다.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다섯 가지 위험은 ①국가 간 분쟁 ②극단적 기상이변 ③사이버 테러 ④국가 거버넌스 실패 ⑤높은 구조적 실업과 불완전 고용이다. 발생 시 파급력이 가장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다섯 가지 위험으로는 ①수자원 위기 ②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 ③대량 살상무기 ④국가 간 분쟁 ⑤기후변화 대응 실패 순이다.
리스크 이론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디스토피아는 ‘테일 리스크(tail risk·꼬리 위험)’에 해당한다. 통계학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문제는 종(bell)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꼬리 위험은 정규분포 상 양쪽 끝으로 발생 확률이 낮아 선제 대책을 세워놓지 않기 때문에 지만 실제로 발생하면 커다란 충격을 몰고 온다. 코로나19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규 분포 상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가 자주 목격된다는 점이다. 꼬리 부문이 두텁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코로나 19와 같은 꼬리 위험은 초기 대응이 생명이다. 사전에 대책을 마련해 놓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과 함께 초기 대응을 잘해야 금융시장과 실물경기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유동성 위기, 금융시스템 위기, 그리고 실물 경제 위기 순으로 전염된다.
미국 증시에서 강세장은 주가가 20% 이상 떨어지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월가 시장 참여자 사이에 게임 체인지 위험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다우존스지수가 20% 이상 순간 폭락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경기도 1990년대 부시-클린턴 국면을 뛰어넘을 정도로 장기 호황이 지속돼 왔다. 경기순환 상 ‘호황’이라는 정의로는 그렇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작년부터 제기돼 왔던 ‘10년 장기 호황 종료설’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경기와 증시도 미국과 같은 운명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있어서는 세계 경기와 증시가 각각 2차 대전 이후 최장의 호황과 강세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웬만한 외부 충격에 잘 견디고 각국 간 공조 채널이 잘 가동돼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바로 이 점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는 ‘전후 최장’이라는 타이틀이 붙긴 하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성장국면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지면 ‘침체’라는 용어가 곧바로 제기될 수 있는 수준이다. 낮은 성장률도 금융위기 이후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이 더 심해져 중하위 계층에서는 체감할 수 없다.
성장 동인은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양적 완화→유동성 공급→자산 가격 상승→민간소비 증가→경기 회복)가 주요인인 만큼 주가 등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곧바로 불안감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급증한 ’빚의 복수’ 시대가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증폭된다.
성장 생태계도 각국 간 세계 가치사슬로 연결돼 중심국에서 경기가 둔화되면 순차적으로 성장률 하락 폭이 더 커지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세계가치사슬 간 상관계수는 ‘0.85’에 달할 만큼 높게 나온다.
각국 간 공조 채널은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가 ‘지금의 상황이 2차 대전 직전 상황과 흡사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2차 대전 직전 상황을 보면 세계 경제 패권이 ‘팍스 브리태니아’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보호주의 물결은 ‘스무트-홀리법’으로 상징되듯 극에 달했다. 극우주의 세력은 부상한 반면 국제연맹은 무기력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세계 경제는 중국의 부상이 이렇게 빠를 줄 아무도 몰랐다.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과 미국이 함께 가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가 빨라도 2020년이 넘어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보다 5년 이상 앞당겨져 미국과 세계 경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보호주의도 1930년대 비유될 만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극우주의 세력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절실한 국제기구의 조정자 역할은 종전만 못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용론 혹은 해체론’, 국제통화기금(IMF)은 ‘파산설 혹은 구제 금융설’까지 나돌 정도다. 국제규범의 이행력과 구속력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약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 부동산 시장에 지금보다 앞으로 더 충격을 몰고 올 변화가 일고 있다. 작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대형 상업용 부동산과 고급주택 시장에 거래절벽 현상이 더 심화되는 추세다. 코로나19 사태로 부동산 매물을 내놓아도 매수 심리가 얼어붙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로 정상적인 시스템이 무너진 여건에서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만이 금융위기에 대처하고 경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미국 중앙은행(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동시 다발적으로 추진했다. ‘부채 경감 증후군(debt deflation syndrome)’에 빠진 경제주체는 능력 이상 돈을 빌려 투자했다.

주가에 이어 세계 부동산 가격이 거침없이 올랐다. 작년 4분기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는 세계주택가격지수는 170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 수준인 159를 훨씬 뛰어 넘었다.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등으로 평가해 보더라도 세계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심하게 낀 것으로 추정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 부동산 시장은 뉴욕, 런던, 베를린, 토론토, 밴쿠버, 시드니, 상하이, 서울 등 주요 도시가 주도해온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용도별로는 주택시장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같은 주택시장이라도 고급주택일수록,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규모별로는 대형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주택은 대체재가 제한돼 가격변화에 따른 수요량 변화가 민간하지 않는 비탄력적인 시장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일수록 공급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되면 가격 하락폭이 커진다. 4년 전 IMF의 ‘주택가격 대폭락(GHC)’ 경고가 최근에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이론적 근거에서 나오는 우려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세계가치사슬 붕괴 이상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임금소득에 비해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돼 경기를 침체시키는 역(逆)자산 효과 때문이다. 동일한 가격 변화폭이라도 상승할 때 자산 효과보다 하락할 때 역자산 효과가 더 큰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역자산 효과는 소비 이론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소득가설’과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정 가구는 생애에 걸쳐 소비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성향, 즉 은퇴 계획을 갖고 있어 소비는 현재 소득과 미래에 기대되는 소득뿐만 아니라 보유 자산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주택가격 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1∼0.15다. 하지만 한국 아파트 가격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23으로 미국보다 2배 가깝게 높게 나온다. 한국 국민의 재테크에서 70%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가 그만큼 환금성이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금융사가 운용하는 각종 부동산 펀드에 증거금 부족 현상인 ‘마진 콜’이 발생한다면 더 큰 문제다. 마진 콜에 응하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기존에 투자해 놓았던 부동산까지 더 처분해야 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 때문이다. 그땐 ‘제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다.
다급해진 곳은 각국 중앙은행이다. Fed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비정례 회의를 통해 ‘빅 스텝’ 방식으로, 즉 한꺼번에 두 단계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여부에 따라 제로금리 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5% 포인트(p) 내렸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려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넓혔다. 3월 회의에서 정책수단을 아낀다는 핑계로 큰 실수를 한 한국은행도 4월 회의(혹은 임시 회의)에서는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판 양적완화 추진 방안도 함께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황이 급박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금리인하는 차선책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는 것만이 최선의 위기 대처법이자 경기 부양책이다. 자산관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민이 방역 관련 기본 수칙을 지키는 동시에 남을 배래하는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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