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합병을 두고 오너 일가와 개인투자자 간 의견이 엇갈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연이은 주가 하락에 일부 상장사들이 구조조정이란 명분으로 합병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성장을 위한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문제는 낮은 주가가 일부 오너 일가에게 승계의 기회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오너 일가만 이득을 얻고 개인투자자와 일반 소액주주는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사례 별로 따져봐야겠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처럼 유심히 살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며 "오너 일가만 유리한 지배구조는 주주 가치 제고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자 증시 상승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성산업, 한국제지 흡수합병…합병 비율 `논란`
부동산 임대 및 개발 회사인 해성산업은 지난 1일 이사회를 열고 계열사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한국제지를 흡수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합병 기일인 오는 7월 1일이 되면 한국제지는 지난 1971년 상장한 이후 50여년 만에 증시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합병 비율을 두고 반발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개인투자자들은 해성산업과 한국제지의 합병 비율이 1주당 1.6661460주인 것에 대해 해성산업은 고평가, 한국제지는 저평가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병비율 상 한국제지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16배인게 문제란 지적이다.
한국제지의 주가는 지난 2015년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최근 한국제지의 PBR은 0.15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개인투자자들은 비율 산정 배경에 단재완 회장의 아들인 단우영 해성그룹 부회장, 단우준 해성DS 부사장의 승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해성산업 측은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제지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팩키지, 계양전기, 해성DS, 세하, 원창포장공업 등 계열사 주식을 해성산업으로 옮겨 중복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OCI·한국테크놀로지 그룹, 합병이 승계 발판?
OCI계열사 삼광글라스가 비상장사 군장에너지, 코스닥사 `이테크건설`의 투자사업 부분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져 나온다.
삼광글라스와 군장에너지, 이테크건설의 합병 비율은 각각 1대 2.54, 1대 3.88인데, 일반 주주들은 삼광글라스가 저평가돼 승계 편법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해성그룹과 비슷하게 OCI그룹 3세인 이우성 이테크건설 부사장과 이원준 삼광글라스 전무 등 3세 승계를 위한 초석이란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금융감독원에 삼광글라스 분할, 합병 비율 재산정 진정서를 제출한 가운데, 금감원이 관련 합병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해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삼광글라스 측은 이번 합병이 경영권 승계에 유불리한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며 공정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며 선을 그었다.
이외에도 한국아트라스비엑스(아트라스BX)의 경우 자진상폐 이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경영권 승계로 활용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지만 최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가 배임수재 혐의로 감찰이 실형을 구형하면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합병비율 산정 투명성 강화…"주주가치 제고"
한국제지, 삼광글라스 등 관련 주주들은 사측에 합병 비율에 대한 불만을 계속해서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개인투자자는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를 손쉽게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오너 잇속 챙기기는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개인투자자는 "일반주주를 가치 대비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라며 "투명성이 부족하면 증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부족한 곳이 많다며 지배주주와 오너 일가만을 위해 개인투자자는 소외시키는 형태의 합병 비율 산정은 옳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소액, 소주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이사 선관주의 의무 등 관련 절차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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