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4년 차. ‘텔미’를 외치던 열여덟 소녀가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됐다.
10년 세월을 국민 걸그룹으로 활동하며 K팝 걸그룹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원더걸스 출신 예은, 아니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핫펠트(HA:TFELT)가 누구도 열어볼 수 없었던, 자신조차 가누기 힘겨웠던 마음을 열었다.
두려웠던 지난 3년을 뒤로하고 밝은 빛을 좇아온 오늘, 그는 새로운 삶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지난 23일 오후 6시 첫 정규앨범 ‘1719’를 발매한 것.
“준비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정성이 많이 들어갔어요. 2017년 JYP를 떠나 아메바컬쳐로 소속사를 옮기게 되면서 상황들이 많이 바뀌었죠. 29세라는 나이에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어요. 그 당시 느낀 감정들이 책과 음악에 담겼어요. 가장 어두웠던 시기라고 표현했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핫펠트의 첫 정규앨범 ‘1719’, 앨범명을 언뜻 보기에도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아있을 것 같아 보였다. 역시나 그 안에는 핫펠트의 감정, 생각, 크게는 삶이 녹아 있었다.
“2017년부터 앨범을 준비했어요. 2017년도에 곡 작업을 시작했지만 방황하기도 했고, 음악적 정리가 완벽하게 안됐던 것 같아요. 정규를 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고, 2018년, 2019년 지나다 보니 생각이 정리하고 음악이 다듬어지면서 정규가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명에서 말하는 ‘1719’는 2017년부터 2019년이라는 현실적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고, 해지는 시간을 말하기도 해요. 저는 오후 5시부터 7시 해가 넘어가면서 꺼지는 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제 시간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더 넓게 보게 되고 세상을 멀리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도 돌아보게 되고 감성적인 시간도 있고, 다가오는 어른이 되는 시간이기도 해요. 한 편으로는 깜깜하고 어두운 시간이기도 했는데 별은 밤에만 볼 수 있지 않나요. 저한테는 변화하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어요.”
이번 앨범에는 ‘Satellite(새틀라이트)(Feat.ASH ISLAND)’와 ‘Sweet Sensation(스윗 센세이션)(Feat.SOLE)’ 더블 타이틀을 포함해 총 14곡이 수록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내 삶을 지탱해온 꿈, 가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음악이 주는 행복감도 분명히 있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니까 지쳐가고 때론 회의감도 들었어요. 그럴 때 인공위성을 보면서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죠. 빛나고 있지만 실제로 별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감정을 담아 노래를 썼어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다들 고민이 있고, 두려움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용기로 바꿀 힘을 주고 싶었고 나 자신도 용기가 필요했어요. `1719`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이 그 꿈인 것 같아 `새틀라이트`를 타이틀로 정했어요. `스윗 센세이션`은 평범한 일상을 담으려 했어요. 힘들었을 때 경험을 담은 곡이지만 나 스스로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나게 썼어요. 서로 다른 분위기로 타이틀을 꼽아봤어요.”
핫펠트는 보다 자신의 음악을 대중이 느낄 수 있도록 잠겨 있던 본인의 이야기를 문체로 풀어낸 책 ‘1719(부제 :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를 발간한다.
“연예인들이 항상 행복할 것만 같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 것 같지만 사실 우리도 사람이잖아요. 힘든 시간을 겪을 때도 있고 남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할 때도 있어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그것들을 감추려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내 안에 병이 악화했던 것 같아요. 2018년부터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책을 써보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어요. 글을 같이 보여주면 내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어요.”
“2017년부터 힘들어진 것은 원더걸스 활동이 끝남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앞으로 핫펠트로서 홀로 해야 한다는 부담도 느꼈죠. 좀 더 많은 것을 이뤄놓았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원더걸스는 항상 많은 시선 속에 살아가니까 실수하면 안 됐죠. 성공에 대한 집착도 있었고 스스로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도 엄격했어요. 해체 후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내려놨던 것 같아요. 인간 박예은이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그러한 것들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핫펠트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앨범을 작업한 만큼 보다 진솔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가족, 사랑, 이별 등 그동안 구체적으로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책 속의 각 챕터에 가감 없이 담아냈다.
“책을 다 쓰고 보여줬어요. 가족들이 반대를 하거나 불편하다고 한다면 내용을 바꾸려 했는데 다들 나라는 사람을 알다보니 너무 진심으로 지지를 해줬어요. 엄마, 언니, 동생 모두 따로 보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게 고마웠어요. 덕분에 나도 ‘이걸 내는 게 맞나’ 하는 두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했죠. 가족들이 자신을 믿고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과 지지를 해줘서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설렜어요.”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 생각해요. 죽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 순간이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긴 적은 없어요. 하지만 우울감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건 아니라서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고 채우려고 노력해요.”
핫펠트는 지난 2017년 10여 년 간 몸담았던 JYP를 떠나 다이나믹 듀오, 리듬파워 등이 소속된 아메바컬쳐에 새 둥지를 틀었다. JYP의 예은과 아메바컬쳐의 핫펠트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터.
“핫펠트의 시작은 JYP엔터테인먼트부터죠. 당시엔 음악적으로 원더걸스라는 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핫펠트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어요. 아메바컬쳐에 오면서는 아티스트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물 흐르듯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됐어요.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노래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사랑이나 이별 노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려고 하고, 음악성에 포커스를 두고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좋은 음악을 우선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대중적인 것을 찾아 회사와 함께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준비해요.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대중적인 것을 생각하면 내 음악이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지난 3년간의 잠겨 있던 시간들을 뚫고 나온 순간을 핫펠트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아티스트로서 조금 더 자신을 다독일 줄 아는 방법도 배웠다. 그는 솔로 활동을 이어오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핫펠트를 찾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내가 해왔던 것에 대한 미련은 없는 편이에요. 대중에게 사랑을 받아보지 않았다면 유명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겠지만, 과거 활동으로부터 그런 것을 많이 채웠어요. 지금 내 갈망은 아티스트로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정체성을 갖는 것이죠. 사람이 다 가질 수 없으니 많은 것에 욕심을 내지 않고 살고 있어요. 정규를 내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고 이렇게 14개의 트랙을 풀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뿌듯해요.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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