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효율 가전 환급 사업 "3천억 더"
정부가 추경을 통해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액의 10%를 30만원 한도에서 현금으로 돌려주는 `고효율 가전 환급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3월 말 1차 추경 이후 1,500억원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정부의 3차 추경안(6월 3일)에서 3천억원이 더 추가되고 대상 품목도 늘어났다. 국회 심의에서 금액이 이대로 확정되면 올해 연말까지 구매 지원금 4,500억원이 확보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이번 구매 환급 사업은 산업부 3차 추경사업액(총 1조 1,651억원)의 25%를 차지한다. 무역보험기금 출연(3,271억원)을 제외하면 산업부 내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전체 환급 사업액이 올해 산업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약 13.7%에 이른다. 일단 산업부는 환급 사업이 소비 진작, 나아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에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산업부 관계자에 따르면 1차 추경으로 확보한 환급금 예산은 거의 다 소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 "가전제품은 원래 잘 팔리지 않았나"
하지만 고효율 가전 환급 사업이 5천억원에 가까운 재원을 쏟아 부을 만한 정책인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먼저 환급의 대상인 가전제품이 연초부터 잘 팔리고 있었던 점이 지적 대상이다. 연초 코로나19가 확산해 건강·위생 수요가 높아지면서 위생가전업체들은 이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1분기 세탁기와 건조기 판매량이 전년대비 60%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1분기 2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섰다. TV와 가전 등 영업이익만 7,535억원에 달했다. 양사 모두 국내 시장 판매 호조 덕을 봤다. 특히 이번에 새로 추가된 대상 품목인 의류 건조기의 경우, 삼성 `그랑데`가 올해 8만 5천대, LG `트롬 워시타워`가 출시 1개월 만에 1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1분기 막바지(3월 23일)에야 환급 사업이 시작한 점을 떠올려보면, 이 업계에 구매 지원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든다.
물론 가전업계도 코로나19 사태의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증권사 리포트들은 가전업계 2분기 실적 악화를 당연시하고 있다. 대신증권과 미래에셋대우 등은 삼성·LG전자 가전부문 2분기 영업이익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 중이다. 보통 가전사업 영업이익률은 4%대 내외기 때문에 1%만 떨어져도 큰 타격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피해를 입은 다른 업종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산업별 대출금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제조업종과 서비스업종 대출액은 각각 14.8조원, 34조원 늘었다. 둘 모두 2008년 통계편제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제조와 서비스를 가리지 않고 `돈 필요한 곳`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35조원이 넘는 전체 추경액에서 4,500억원은 사소해보일 수 있지만, 그나마 라도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악화한 업종에 투입해 효용을 더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승용차 구매에 적용되는 개소세 인하 정책이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지난 3월부터 개소세를 기본 5%에서 3.5% 낮춘 1.5%로 적용해왔다. 개소세 인하 덕에 자동차 업계는 생산과 수출이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내수를 든든히 지켰다.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차 등은 내수가 전년대비 성장하기도 하는 등 업계와 소비자를 동시에 도운 `효용성 높은 정책`으로 평가 받았다.
승용차 개소세는 7월부터 이전 수준인 3.5%로 소폭 상승하는데, 이때 최대 인하 폭 100만원이라는 한도도 함께 사라질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공장출고가가 약 6,700만원이 넘는 차는 개소세가 1.5%이던 때보다 3.5%일 때 더 싸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서민들이 대부분 중·저가 차를 사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소비 정책"이라며 "재원이 더 들더라도 1.5%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등의 고민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 "다른 업종, 다른 정책 필요한 때"
당초 고효율 가전 환급 사업이 코로나19로 인해 등장한 정책이 아닌 점도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이전 정부 시절인 2016년 여름에도 3개월 간 고효율 가전제품에 대한 환급금 930억원이 지출된 바 있다. 작년 11월에도 전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240억원 규모의 환급 사업이 진행됐다. 달리 말해 환급 사업은 정부가 `소비 진작책`으로 활용해온 카드였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감소한 산업을 돕는 산업 정책이 필요한 상황인데, 환급 사업은 소비에만 집중하는 셈 아닌가"고 지적했다.
물론 이번 지원 사업의 목적이 소비 촉진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환급 사업 홈페이지에 소개된 사업 개요에는 `내수 진작 및 에너지효율 제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이번 사업으로 고효율 가전제품이 보급되면 연간 약 6,900MWh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여기에 긴급재난지원금 외에도 고효율 가전을 구매한 가계에 직접적인 현금을 지급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 환급 사업을, 그것도 3천억원이나 추가할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올해 첫 환급 사업액인 1,500억원도 당초 3천억원이었던 정부안에서 "코로나19와 직접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회가 절반 감액한 금액이다. 곧 열릴 21대 국회의 3차 추경 심사에서 고효율 가전 환급 사업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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