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지난 4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2만4천TEU급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 호의 명명식이 열렸기 때문인데요.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핵심 인사들까지 축하 속에 알헤시라스호는 HMM(구 현대상선)에 인도됐습니다.
알헤시라스 호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첫 성과물이었습니다.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유일한 대규모 국적 원양선사가 된 HMM에 대한 지원을 주요 골자로 했습니다. 정부는 무려 3조 1천억 원을 지원해 HMM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2년이 지나 첫 결과물이 나왔으니, 대통령도 그 실물이 상당히 궁금했을듯합니다.
알헤시라스 호를 시작으로 2만4천TEU급 선박은 총 12척이 건조됐습니다. 현재까지 9척이 운항에 투입됐고, 이중 7척은 이미 만선 `잭팟`을 터뜨리는 성과도 얻고 있는데요. 이쯤 되면 이 초대형 선박의 실물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Fact-tory가 6번째로 방문한 공장은 2만4천TEU급 컨테이너선 12척 중 막내, `상트페테르부르크` 호 마무리 건조가 한창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입니다.
[Fact-]
선명: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규모: 2만 4천 TEU (1TEU = 20피트 컨테이너 1개)
길이·폭·높이: 399.9m·61.5m·76m
최대 속력: 22.5kts (시속 41.7km)
◎ 에펠탑보다 긴 선체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이라는 명성대로, 배 크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배 길이만 400m로, 바로 세우면 에펠탑(300m)보다도 100m가 더 큽니다. 엔진룸이 있는 선미에서부터 선수까지 가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전체 건조율은 95%. 일주일 뒤 시운전 예정일 만큼 운항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장치가 갖춰진 상태였습니다.
조타실과 선실이 있는 거주구에서 내려다 본 컨테이너선의 전경도 장관이었습니다. 갑판 전체 넓이는 축구장 4배 규모. 갑판에는 컨테이너가 담길 초록색 칸막이들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배 내부까지 컨테이너를 담기 위해 갑판 아래 깊이도 상당히 깊었는데요. 컨테이너는 갑판 아래로 9단, 위로 8~9단을 쌓는다고 합니다. 가히 컨테이너 2만 4천 개가 담길만한 공간이었습니다.
선실은 여느 배와 마찬가지로 선원 등급이 낮을수록 아래층을 사용하는 구조였는데요. 초대형 배 치고는 선실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배를 운항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선장을 포함해 고작 23명 정도라고 합니다. 비상시 탈출을 위한 라이프 보트도 2대밖에 없었습니다.
◎ 장충체육관 만한 엔진룸
엔진룸은 내부 작업과 시운전으로 인한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전체적인 공간은 장충체육관(!)보다도 넓은듯했습니다. 주기관인 메인 엔진과 기타 보조 기관, 발전기 5기, 컨트롤 룸(ECR)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엔진룸 위로 계단을 오르자 친환경 설비인 황산화물 스크러버(SOx scrubber)가 나타났습니다. 세계해사기구의 환경규제에 따라, 중유(HFO)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거를 스크러버를 엔진 상단부에 배치한 건데요. 배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습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스크러버 3개의 높이는 20m, 가장 큰 메인 스크러버의 지름은 6.5m나 됐습니다. 스크러버를 보기 위해 뜨거운 엔진룸 속에서 아파트 8층 높이를 오르내리니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Story]
◎ 유럽의 주요 항구들
이번 2만4,000TEU급 선박의 명칭은 모두 유럽의 도시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아일랜드의 더블린, 영국의 사우샘프턴 등 주요 항구 도시들이 선명으로 채택됐는데요. "유럽 항로에서 잃어버린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을 되찾아 해운 재건을 이루자"라는 취지라고 합니다.
이름 덕분일까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2만4,000TEU급 선박들은 연달아 만선을 기록 중입니다. 5월 8일 알헤시라스호가 옌톈에서 만선 후 유럽으로 향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7호선 함부르크 호까지 컨테이너가 가득 찼습니다. 아시아 구간을 운항 중인 8·9호선도 만선이 유력하다는 후문입니다. 2년 전 "초대형선에 화물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던 우려를 불식시키는 행보입니다.
초대형 선박 인도로 선복량이 늘어난 점도 호재로 작용 중입니다. 내년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인도가 완료되면, HMM의 선복량은 현재(45만TEU)보다 두 배 수준인 90만TEU로 늘어납니다. 선복량을 기준으로 세계 8위 선사에 오르게 되는 셈입니다. 한때 선복량 세계 5위까지 올라섰던 한진해운의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 "해운 매출 51조 원"
한진해운 사태 이후 우울하기만 했던 해운업에 모처럼 단비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HMM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1,387억 원을 기록한 건데요. 2015년 1분기 이후 21분기 만이고, 채권단 경영 이후 첫 흑자 전환입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진해운 사태 직후 29조 원까지 떨어졌던 국내 해운사 매출액은 지난해 37조 원으로, 한진 사태 이전 수준(2015년 39조 원)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HMM 실적은 이례적으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발표했습니다. 해운 산업에 정부 차원의 전방위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문 장관은 "HMM의 경영이 정상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2022년 당기순이익 달성, 2025년 매출 51조원을 달성하겠다"라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초대형 선박 운용은 HMM의 흑자 전환의 터닝포인트로 기록됐습니다. 올해 4월부터 세계 3대 얼라이언스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 정회원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초대형 선박이라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게다가 2만4,000TEU급 선박은 유럽항로 평균 선형인 1만5,000TEU급 선박에 비해 운항 비용이 약 15% 절감되는 것으로 알려지며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해운 산업을 짧은 시간 내로 복구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초대형 선박은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2만4천TEU급 컨테이너선 상트페테르부르크 호에서 한국 해운 재건의 힘찬 뱃고동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