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이 낳은 경제 실패"…'임차인 스타' 윤희숙 의원 [임앵커가 만난 사람]

임원식 기자

입력 2020-09-11 15:30   수정 2020-09-11 15:45

"경제 낙제점 원인은 경험·데이터 무시하는 오만함"
"586 최대수혜...규제완화로 게임룰 바꿔야"
"경기부양·3단계 이재명 지사 발언 모순"
"서울시장 출마 '노코멘트'...서울 만만한 곳 아냐"


지난 7월 30일 국회. 자그마한 체구에, 낯선 얼굴의 한 의원이 단상 앞에 섰다. 여당의 주택임대차보호법 단독 처리를 앞두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분노와 걱정이 반반 섞인 듯한 목소리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

21대 국회가 문을 연 지도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거대 여당의 출현 속에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과반인 151명이 국민들 앞에 새로 섰다. 그 가운데 `부동산 5분 발언`으로 일약 스타가 된 의원이 있다. 윤희숙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의원 얘기다. 스무 차례 넘는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던 그 때, 윤 의원의 발언은 `사이다 발언`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곳곳을 누볐다.

"주택임대차 보호법이 그냥 듣기엔 약자를 위한 법 같지만 약자를 더 고단하게 만들 거란 걸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긴장감 없이 준비한 5분 발언인데 얘기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웃음) 큰 실수 없었다 정도에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호하고 똑부러진 모습을 기대했던 기자의 생각과 달리 그의 첫 인상은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 했다. 세간에 화제가 된 5분 발언에 대해서도 그는 몸을 낮췄다.

"정치적 진영 상관없이 시장 돌아가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 대변해 주는 사람이 그간 없었는데 그들(국민)의 언어로 대변해 줬기에 좋아해 준 거라 생각해요. 아, 국민들이 하고 싶은 얘길 대변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죠."



초선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당내에서 경제혁신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신에, 과거 최저임금위원회 위원과 국민경제자문위원을 지냈던 만큼 `경제통`으로 알려져 있다.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비판 또한 사회과학도 출신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도우려고 했던 사람을 더 곤란하게 만드는 걸 사회과학에선 가장 경계합니다. 임대차보호법이 그런 겁니다. 임차인을 도와준다고 임대인을 적대시 했지만 그 법이 결국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비용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그 일을 하지 않은 거죠."

실제로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2주째 상승세에 있다. KB 주택가격동향을 보면 평균 전셋값은 처음으로 5억 원을 넘겼다. 2011년 6월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그나마도 전세가 귀해지면서 반전세 비중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셋값 급등은 가계대출 급등에 일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가계대출은 한 달 사이 11조7천억 원이나 늘었다.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현 정부의 국정 지지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지목하는 분야는 늘 한결 같다. 부동산을 포함한 경제정책이다. 경제에 관해서는 `낙제점`이라는 평가다. 윤 의원에게 원인을 물었다.

"경제정책에서 당연히 존중해야 할 과거 축적된 지혜나 경험적 사례, 이론과 예측들을 너무 무시해요. 오만한 거죠.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임금을 높이면 성장이 이루어진다? 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정치적 동기가 너무 강해요. 정치와 경제정책 구분을 아예 안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을 엄청 올려서 본인들의 지지기반에 어필하고 공고히 결집하도록 한 것 밖에 없어요. 정치적 이득이 생겼다 그러면 젊은이들 일자리 없어지는 것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 식이죠."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제정책을 펴면서 소외계층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식의 큰 정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 반대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우려만큼 청년 일자리 문제에도 걱정이 많았다. 이른바 `586세대`의 기득권 행태에 대해 정면 비판했다. 지금의 청년 나아가 미래 세대가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혁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586세대는 어마어마한 수혜를 받은 계층이에요. 부모들이 열심히 모아주고 가르쳐 주고 본인들은 휴먼 캐피털(자산) 쌓으면서 노동시장 한참 좋을 때 자리를 차고 들어갔지요. IMF 시절에도 윗세대가 사라졌지 586은 살아남았어요. 지금의 노동시장 구조에서 게임의 룰은 그들에게 너무 유리합니다. 자리를 잡은 이상 비켜줄 생각도 없고요."

"문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한 건 `공정`이었어요. 그런데 세계가 급박하게 바뀌고 있고 이미 우리나라도 고성장에서 저성장 경제로 돌아서면서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이죠. 그런데도 게임의 룰을 바꾸겠다는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안하고 있어요. 이건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자 정부가 굉장히 무책임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맹비난했다. 전 세계가 가치 사슬로 엮인 오늘날,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파이`도 커지고 일자리도 만들어지는 법인데 그 반대로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규제 완화가 `게임의 룰`을 바꿔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바뀌면 과거의 제도 아래 안정적인 환경에 안주하고 군림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청년들이 그 자리에 새로 진출할 거란 논리다. 다시 말해 규제 완화가 일자리라는 기존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역할을 할 거란 주장이다. 하지만 윤 의원은 현 정부에 이러한 개혁 의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예컨대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불편함을 느낀다.

"`최저임금`은 어쩌면 복지와 같은 개념인데 왜 노사가 이걸 정하죠? 아무말 대잔치에 늘 고성이 오가며 노사 양측이 한 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고. 정부 또한 뒷짐만 진 채 개선하겠다고 나서려 하지도 않아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니깐."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일본 방식을 참조할 필요가 있어요. 노사에 최저임금 결정권을 맡기되 정부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실업률과 평균 임금상승률, 경제성장률 같은 객관적 수치를 앞에서 명시적으로 제시하라는 거죠. 아무도 딴지 걸지 못하도록."

백신, 치료제 개발은 더디기만 한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특히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결국 정부는 또 한 번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벌써 4번째. 8조 원 가까운 규모다. 피해 계층과 집단을 우선 선별해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윤 의원은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경기부양`이 아닌 `피해구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줄곧 선별 지급을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해 전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재난지원금 지급에 정치색이 더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전 국민에 돈을 풀자고 얘기하시면서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경기부양을 넣어 두자는 얘기 아닌가요? 이 지사의 주장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코로나 시국을 견뎌내기 위해 정부가 재정 투입에만 기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인프라 개선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스마트기기 접근성이나 활용 능력에 따라 사람들 간의 `연결(커넥션) 격차` 또한 커지고 있다. 일명 스마트워크 센터 구축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간 스마트워크를 위한 인프라 차이가 너무 커요. 나라 전체 생산성을 높이려면 결국 언제, 어디서든 회의가 가능하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동네 공유지든 도서관이든 주민 센터도 좋아요. 스마트워크 센터를 만들어 주는 거죠."

"하이테크는 또 하이터치가 병행돼야 합니다. 무슨 얘기냐, 산업구조의 격변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역할이 재정의 돼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교사의 경우 지식 전달이라는 전통적 역할은 이제 온라인 AI(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해졌어요. 앞으로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보며 뒤처지는 아이들과 교감하며 위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역할이 더 중요해진 시대죠. 이 역시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분야입니다."


국회 `5분 발언`이 가져다준 효과라고 봐야 할까.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윤희숙 의원을 거론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미 당내에서 직접적 제안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에게 출마 계획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역시나 답은 `노 코멘트`. 일각에서의 `여성시장 대세론`에 대해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서울은 이미 전 세계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에요. 동시에 많은 모순이 집약돼 있습니다. 돈과 사람이 모이는 대도시들의 숙명이죠. 글로벌 도시로서 약진 동시에 빈부격차 해소. 이 두 가지 압도적 과제를 풀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성에 국한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가진 최대한의 인적자원 풀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최대의 휴먼 캐피털이 나와야 하는 거죠. 서울,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마무리 발언을 해 달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격변하는 환경, 전환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우리 내부에서의 갈등이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대비해 우리의 역량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담론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00일 남짓, 정치인의 삶을 살면서 매일 깨닫고 있는 지점이라고 했다. 결국은 정치로 풀어야 할 과제라는 말을 덧붙이며.

21대 첫 정기국회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그가 준비할 다음 `5분 발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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