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야 하는 총수 이재용 부회장의 부담이 더욱 가중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부터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해왔고, 2018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통해 공식 총수에 올랐다.
그동안은 이 회장이 생존해 있었고, 이 부회장이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이 촉발된 2016년 말부터 수년째 수사·재판을 받느라 완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장 사법 리스크와 상속·지배구조, 사업 재편 등이 이 부회장이 마주한 과제로 꼽힌다.
특히 이 회장 지분 상속 문제가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는 물론 삼성그룹 사업구조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식의 가치는 현재 18조2천억원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가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재계와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기본 구조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관측에 따라 이 회장 별세 후 삼성물산 주가가 반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 중 지분을 처분해야 할 수 있다. 지분 매각 대상으로는 삼성생명이 거론된다.
삼성생명 지분을 이건희 회장이 20.76%을 보유했고, 이를 포함해 삼성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7%.02%에 달하기 때문에 일부 매각은 이 부회장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당장은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삼남매가 계열 분리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호텔·레저부문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을 역임했던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패션부문을 맡아 따로 독립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도 관심을 받는다. 최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공식 회장으로 취임하며 4대 그룹 중 이 부회장만 `회장` 타이틀을 달지 못해 격을 맞추는 차원에서라도 머지 않아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이병철 선대회장 별세 후 20여일 만에 회장에 취임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임기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상태라, 회장 승진과 함께 등기이사 복귀를 추진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장례식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본인의 색을 드러낼 전망이다. 연말 인사를 `뉴 삼성`으로의 변화 가속을 알리는 상징적인 내용으로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이 다시 인수·합병(M&A) `빅딜`에 뛰어들 것으로 재계는 예상한다.
삼성은 2014년 말과 2015년 석유·방산, 화학 사업을 각각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매각했고 2016년에는 미국 하만을 인수했다.
이 부회장이 수사·재판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굵직한 M&A가 끊긴 상태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인공지능(AI)·6세대 이동통신(6G) 등 미래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M&A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 재판, 국정농단 사건 재판 등 사법 리스크는 앞으로 수년 더 이어지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우선 자신의 리더십과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라며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며 `이재용 시대` 삼성을 구체화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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