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2년 반 만에 1,08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수출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우리 수출이 코로나19 늪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환율 급락 암초를 만나면서 수출 당국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근 원화 강세는 미 경기부양책과 백신 개발 등에 따라 경기 회복 전망이 긍정적으로 돌아서면서 안전자산으로 몰렸던 돈이 신흥국으로 몰리는 데 따른 것이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전할 때 손에 쥐는 수입이 줄어든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원자재와 장비 수입 물량이 많은 기업에는 채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원화 환율 강세가 업종별로 미치는 영향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 경제 주체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기업들은 당장 내년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데 애를 먹는 분위기다.
◇ 자동차는 ‘타격’…반도체·철강은 일단 ‘주시’
자동차 업계는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하락에 따른 타격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자동차산업연구소는 2017년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약화로 우리 자동차 산업(완성차 5개 사 기준) 매출이 약 4천200억 원 줄어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은 만큼, 이로 인한 전 세계적인 수요 위축까지 겹쳐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부품업체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도 수출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한 달 전만 해도 1천170원 정도이던 환율이 현재 1천90원까지 내려갔으니 거의 10%의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코로나로 전 세계적인 수요가 위축됐고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환율까지 급락하면 우리 자동차 업계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정 회장은 “환율은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시장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동차업계가 갈등을 겪는 노사 관계라도 잘 해결해 위기 대처를 위한 유연성과 생산성을 높여야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업계는 상대적으로 환율 변동에 덜 민감한 편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기업들이 수입과 수출 시기를 조절해가면서 환율 하락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변동 폭 수준에서는 큰 영향은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원재료 수입이 많은 철강업의 경우 환율이 떨어지면 원료 수입 가격에서 경쟁력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내수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철강업체의 수출 비중이 포스코[005490]는 50% 이상, 현대제철[004020]은 25~30% 정도로 늘어나 환율 하락이 반드시 호재일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 감소…중소업체는 환위험 노출”
다만 환율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보다는 감소하는 양상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10개년 중 환율이 전년 대비 하락한 5개 년도는 수출이 늘었고, 오히려 환율이 상승한 5개년도는 오히려 수출이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환 변동이나 헤지 전략이 활성화됐다”면서 “가전·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의 품질이 향상되고 스펙이 고도화되면서 환율에 따라 가격이 조금 변동됐다고 해서 시장 지배율이 곧바로 낮아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 수출기업들은 여전히 환위험에 노출돼 있다.
무역협회가 최근 국내 수출기업 801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은 적정환율과 손익분기점을 각각 달러당 1천167원과 1천133원으로 제시해 현재 환율과 큰 차이가 있다.
특히 환율 하락 때 응답 기업의 65% 이상은 수출액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의 61.1%는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는 대기업은 8.9%였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환 헤지 상품에 많이 가입해있지만, 시중 상품 만기는 주로 6개월 미만이어서 환율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대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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