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간) 한국 회사 소유의 민간 선박을 억류한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이 선박이 오염 물질을 배출했는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나 경중보다는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이란의 최대 현안은 한국의 은행 2곳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이다.
약 70억 달러(7조6천억원) 규모로 알려진 이 자금은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이들 한국 내 은행에 개설된 원화 계좌에 예치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양국의 물품 거래를 위해 미국 정부의 용인하에 거래가 이뤄지던 이 계좌는 2018년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해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을 우려한 이들 한국 내 은행은 이 계좌를 통한 양국 기업의 상품 거래 결제를 거부하면서 이 자금이 사실상 동결됐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외화난이 심각해진 이란 정부는 한국이 이 자금을 이란에 돌려줘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이란에서 `코로나19` 피해가 커졌고, 이란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의약품과 방역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외화 확보가 시급해졌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인도적 물품 거래에 이 동결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꾸준히 요청했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 문제로 한국과 이란의 관계가 악화하는 동안 미국 대선에서 핵합의를 되살리겠다고 공약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서 외교적 환경에 변수가 생겼다.
한·이란 협회의 김혁 사무국장(외국어대 겸임교수)은 5일 연합뉴스를 통해 "이번 한국 선박 억류가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앞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미국과 직접 대화를 거부하는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대신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경제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인 만큼 70억 달러는 이란에 매우 긴요한 자금이 될 수 있다"라며 "한국 정부도 미국의 정치 지형이 변화하는 시점에 맞춰 이번 억류를 계기로 이란과 접촉면을 넓힐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외교차관의 이란 방문이 추진되는 시점에 한국의 선박을 억류한 것도 동결 자금과 관련해 한국과 협상에서 우위에 서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이란이 미국의 맹방인 한국의 선박을 억류함으로써 제재에 동참하는 여타 친미 동맹국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번 억류가 정권 교체기의 미국과 이란의 대치 국면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2019년에도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이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 항공모함 전단을 조기 배치하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민간 선박을 해양 오염, 항해 방향 위반, 불법 조업 등을 이유로 잇따라 나포했다.
이란군은 미국이 걸프 해역에서 군사적 위력을 과시하면 이에 즉각 대응해 세계 최대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제3국의 선박을 종종 억류해 `제해권`을 대외에 확인했다.
이번 사건도 미국은 지난달 지난달에는 전략폭격기인 B-52 2대를 걸프 해역에 출격하고 이달 3일엔 본토로 귀환하려던 항공모함을 걸프 해역에 계속 주둔하기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이란을 겨냥해 군사적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발생했다.
직접 연관성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란이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한 직후 한국 선박을 억류한 것은 출범한 바이든 정부를 향해 제재를 풀고 핵합의에 조건없이 복귀하라는 강경한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 CNN방송은 4일 "우라늄 농축도 상향, 한국 선박 억류 등 이란 행보는 단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한국 선박이 오염 물질을 배출했는지와 관계없이 이란은 이를 억류함으로써 걸프 해역의 항행에 대한 이란의 잠재적 영향력을 저강도로 각인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어 "이란의 동결 자금이 있는 한국은 (미국과 이란의 대치 속에서) 상대적으로 중립적 희생자다"라며 "미국의 동맹에 충분히 (이란의) 메시지가 전달됐고, 모든 사안은 연결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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