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선 배달…먹지 못하면 먹힌다 [한입경제]

김종학 기자

입력 2021-01-08 17:05   수정 2021-01-08 17:05

    '라스트마일' 산업으로 바꿨지만
    한국인 등 돌리게 한 배달의 민족
    배달 시장 재편하는 거대 자본
    한국 배달 산업, 주도권 잡을까



    우리나라 배달시장 78%를 쥔 배달의 민족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끝에 결국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에 넘어갑니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지난달 28일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지침에 따라 한국 자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요기요·배달통)를 떼어내고, 배달의 민족 모회사인 우아한형제들 지분 88%를 인수할 예정입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올해 상반기 안에 2위 업체 요기요 매각을 마무리하면 한국 배달 시장과 아시아 전역의 배달 업체 지형도 크게 달라질 전망입니다. 그런데 딜리버리히어로는 왜 요기요를 포기해가며 5조 원을 들여 배달의 민족을 선택했을까요? 그리고 배달의 민족은 왜 다국적 회사 품으로 들어가려 하는 걸까요?

    ● 배달앱 시총이 53조…사활 건 `돈` 전쟁

    딜리버리히어로가 요기요를 포기하는 초강수를 둔 배경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에 설치한 1개의 대형 배달업체만 이용하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만 1,9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가진 배달의 민족만으로도 간편결제, 소규모 배달 등 사업 확장이 용이해지는 겁니다.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지난 12월 9일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배달 플랫폼 도어대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미국 배달앱 1위 회사인 도어대시(Doordash)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상장 당일 86% 폭등했습니다.

    도어대시는 배달앱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설립 7년 만인 2019년 기준 미국 이용자 수 2천만명, 점유율 45%를 웃도는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으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상장 이후 한 달간 주가가 다소 하락했지만, 현지시간 7일 종가기준 주당 152.77달러,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53조 원(485억 달러), 단숨에 한국 인터넷 대표기업인 네이버보다 큰 회사가 주식시장에 나타난 겁니다.

    심지어 스탠포드대 출신 학생들이 뭉쳐 만들었다는 이 배달앱의 최대 투자자는 100조 원 비전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입니다. 중국 알리바바, 한국의 쿠팡 등 유통 플랫폼에 투자해온 손 회장이 소규모·초단시간 배송이 가능한 배달 플랫폼에 베팅한 겁니다.

    ● 몸값 오른 `배달 오토바이`..동맹은 필수?

    두 회사가 과감한 결합을 선택한 배경은 배달 산업의 성장 속도를 말하는 각종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 5일 공개한 국내 모바일 쇼핑 거래액을 보면 지난해 11월 한 달간 10조 2,598억 원, 상품군 가운데 무려 60%가 음식 서비스로 집계됐습니다. 2017년 연간 2조7천억원 규모였던 배달앱 음식 서비스 결재액은 지난해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됩니다.

    문제는 배달 플랫폼의 진입장벽은 낮지만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배달 플랫폼은 코로나19 이후 `소규모 물류` 역할까지 맡아가며 매달 1조원 가까운 현금 결제가 일어나지만, 골목길 집앞까지 배송할 인건비, 물류와 각종 할인 등 출혈을 감수해야 살아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매출 5,654억 원을 기록했지만 2, 3위 업체와 경쟁하느라 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지난해 배달업 호황에도 높은 영업이익을 기대하긴 힘든 시점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본력으로 쉽게 한국 1위를 가져갈 줄 알았던 아시아 1위 딜리버리히어로(요기요)에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집니다.

    더구나 한국과 아시아(그랩), 유럽(테이크어웨이닷컴), 미국(우버이츠) 등 전역에서 후발 업체들의 공세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죠. 출혈 경쟁하던 두 회사는 자본력과 네트워크로 한국 시장을 지키고, 아시아 시장까지 확실히 가져갈 수단으로 서로를 필요로 했던 겁니다.

    ● 민족 타령은 그만…거대 자본의 속내는

    두 회사의 결합으로 분명해진 건 돈 되는 산업 `물류 플랫폼`을 쥐려는 거대 자본이 일찍부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왔다는 겁니다. 주주 구성을 보면 초기 런칭 당시 `어느 민족이냐`라고 묻던 광고 이미지와 달리 완전한 한국 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자공시를 살펴보면 우아한형제들의 주주는 힐하우스BDMJ 홀딩스(Hillhouse BDMJ Holdings)가 18.02%, 브로드 스트리트 인베스트번트홀딩스(Broad Street Investments Holdings)와 김봉진 대표가 각각 9.69%, 9.89%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힐하우스BDMJ 홀딩스가 중국계 사모펀드 자금을 수혈받아 성장한 플랫폼 회사인 셈이죠.

    이번에 배민을 5조원에 쥐게 된 딜리버리히어로 역시 다국적 혈통의 회사입니다. 창업자 니클라스 오츠버그가 설립 이후 쉴새 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웠는데 이 돈줄은 아프리카계 투자회사인 내스퍼스로 밝혀졌습니다. 내스퍼스는 중국 텐센트의 주주이자 1위 배달업체인 메이투안을 운영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배달의 민족은 이제 다국적 자본의 지원 아래 우아DH아시아 계열 한국 회사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될 전망입니다.

    ● 아시아 배달 주도권 잡았지만 씁쓸한 이유는..

    한국인들에겐 씁쓸함을 남겼지만 배달 플랫폼은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한국과 아시아를 쥐게 된 딜리버리히어로, 미국 1위 도어대시와 한국 쿠팡에 투자한 소프트뱅크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유럽은 네덜란드 테이크어웨이닷컴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영국의 저스트잇을 흡수했고,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를 안방에서 밀어낸 거대 기업이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전 세계 배달시장은 마치 삼국지처럼 미국, 유럽, 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이들 세 기업의 주도권 싸움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점차 배달 산업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대신할 간편결제, 냉장고를 대체할 소규모 물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배달의 민족`은 이런 변화의 최전선에 서게 됐습니다.

    다만 이렇게 놀라운 소식들은 국내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건 왜 일까요. 할인쿠폰 몇 개로는 만회하기 힘든 비싼 배달비, 음식점 업체에게는 일관되지 않은 수수료 정책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우진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 시장에 나가 판을 키워 보려했다던 김봉진 대표는 배달업계 신화로 다시 금의환향 할 수 있을까요. 덩치도 커진 만큼 B급 감성에 호소하는 회사가 아니라 소상공인 파트너들과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일으킬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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