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국회 역사에 남을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2일 개최한 `산업재해 청문회`였습니다. 산업재해만을 주제로 국회 청문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청문회에는 산재 빈발 기업 중 500인 이상인 9개 사업장의 대표들이 출석했습니다.
청문회 자체만큼이나 관심을 모았던 건 "허리가 아프다"라며 불출석 사유서를 냈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었습니다. 환노위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여론까지 악화하자 최 회장은 다시 출석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사상 첫 포스코 회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다소 퇴색됐습니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의원들의 질의는 최 회장에게 집중됐습니다. "허리 아픈 것도 불편한데 롤러에 압착돼서 죽으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나(김웅 국민의힘 의원)"는 말부터 "불출석을 시도한 행동이 곧 회장님의 인성(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대국민 사과는 대국민 생쇼라고 볼 수밖에 없다(노웅래 민주당 의원)"는 등 수위 높은 언행들이 나왔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날 질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더 이상 산업재해 사고 사안이 여야·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뚜렷한 요구 사항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Fact-tory에서는 각종 산업재해와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 나아지지 않는 산재 통계…여전한 `위험의 외주화`
이날 질문들은 ▲왜 산재 사고가 줄지 않나 ▲여전히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나에 집중됐습니다. CEO들은 "안전사고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지만, 현장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이달만 들어서도 5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을 준비하던 40대 노동자가 철판 작업용 받침대에 끼어 숨졌고, 8일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하청업체 30대 하청업체 직원이 설비에 몸이 껴 숨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산재 사고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증명됩니다. 먼저 ▲산재 사고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날 출석한 9개 기업들의 산재 사상자 수는 지난 5년간 128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사망자 103명, 부상자는 25명입니다. 범위를 500인 이하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5년 연속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총 38개소, 사망자만 1,269명에 달합니다.
▲위험의 외주화도 최근 5년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윤준병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16~2020년 산재 관련 청문회 출석 9개 기업별 중대재해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5년간 하청의 산재 사고자 수는 110명입니다. 그 사이 원청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자 수는 18명. 전체 산재 사고자 128명 중 85.9%가 하청에서 벌어졌습니다.
● 모두 불만족하는 중대재해법, 쌓여가는 과제들
산재 사고들을 막고자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습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 대상을 구체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제 사고가 난 법인 외에 사업자 혹은 경영책임자 개인에게도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법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중대재해처벌법은 `만들다 만 법`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부딪히면서 수정·변경이 잦다 보니 양쪽 모두 불만이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 법안을 제안한 노동계는 처벌이 가능한 경영책임자의 구체적인 범위가 불분명하다고, 경영계는 왜 산재 사고를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묻냐고 항의합니다. 노동계는 본래 법안 취지가 훼손됐다고 항의하고, 반대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연일 정부에 보완 입법을 추진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아쉬움은 법조계에서도 제기됩니다. 법이 사건의 예방보다는 개인에 대한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2020년 입법평가 특별위원회에 참여한 김광덕 변호사는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에 관한 처벌 수위가 낮았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형사처분에 집중하기보다는 산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산재 사고에 관심을 갖는 출발점을 법이 아닌 행정적인 조치로부터 풀어나가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강제성이 있는 법보다는 현업과 가까운 행정 조치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 "사죄드린다" 대신 유의미한 대책 필요한 때
그래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사상 첫 산업재해 청문회가 열린 점은 긍정적인 대목입니다. 적어도 청문회에 출석한 기업 CEO들은 산재 사고에 위기의식을 갖고 각자의 개인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산재 사고가 가장 많았던 건설사 대표들도 "잦은 사망사고로 인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장의 안전 의무를 원청의 경영 책임자들이 지도록 유도하는 중대재해법의 취지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쌓여있습니다. 청문회가 열렸음에도 CEO들로부터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책이나 투자 계획에 대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청문회에 참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만이 산업재해를 전담하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필요하다면 정치적 압박 외에도 ESG 경영 강조,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 등의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합니다. 산업재해 청문회가 `보여주기 식`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한 유의미한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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